얼굴 바꾼 신경숙 '통증 대신 웃음'
얼굴 바꾼 신경숙 '통증 대신 웃음'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8.07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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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북데일리] “침묵하고 싶지만 꼭 말을 해야 한다면 이런 걸세.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불꽃처럼 일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하게, 쓸모 있게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 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받는 사람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는 것이라네.” 30쪽

작가 신경숙을 떠올리면 알 수 없는 슬픔이 전해진다. 그러니까 신경숙은 통증이다. 잔인하게도 그녀의 글은 언제나 어떤 부재를 인식하고 재확인시켰기 때문이다. 크고 강한 목소리가 아닌 아주 가냘픈 떨림으로 전달한다. 그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녀의 글에는 언제나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이 있었다. 속이 시원하게 울고 나서야 웃을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2013.문학동네)라는 짧고 가벼운 형식의 소설이 반갑다.

신경숙은 분명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편한 이웃처럼 다가왔다. 울고 웃는 일상의 순간, 오래된 친구들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내밀한 순간, 차오르고 기우는 달처럼 살아가는 삶의 순간들이 있다. 한 번쯤 부딪혔을 감정을 여과 없이 고스란히 담았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삶의 정면이 아닌 뒤안길에서, 혹은 삶의 정면과 고군분투하는 조각들은 우리네 모습과 닮아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속극을 시청하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려면 적어도 그 드라마를 봐야 하고, 딸에게 전해줄 나비장을 베보자기에 싸서 지하철을 타는 노파의 마음을 헤아리려면 그 나이가 되어야 한다는 걸, 술에 취해 옛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탓할 수 없다는 걸, 공허한 마음에 매번 대학 전임교수 임용시험장에서 만나는 경쟁자에게 측은한 마음이 드는 건, 모르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 모두가 그러하다.

어디 그뿐인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거나 길 고양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일이 틀어져 어디에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은 우리네 작은 마음이 짧은 소설 속에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복잡다단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초승달에서 반달을 지나 보름달로 커진 달이 다시 그믐달에서 초승달로 반복하듯 삶도 그런 것이다. 크게 변화하지 않는 일상의 반복이다. 그래서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믐달이 지나고 다시 초승달이 뜬다는 걸 알기에, 달이라는 이름의 누군가가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기에. 깜깜하고 어두운 인생이라는 길을 비춰주며 함께 걸어가는 존재 말이다.

통증 대신 환한 웃음을 선사한 책이다. 힘들고 속상한 일이 끊이지 않는 일상에 지쳤다면 이 책의 스물여섯 짧은 이야기가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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