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인은 왜 저리 괴로워할까
저 여인은 왜 저리 괴로워할까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7.30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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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소피 옥사넨의 <추방>

 [북데일리] 전쟁은 삶의 모든 것을 파괴한다. 파괴된 삶은 온전하게 복구되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기억으로 남는다. 때문에 전쟁을 소재로 다룬 소설은 언제나 가혹하다. 표지 속 여인의 절망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한 소피 옥사넨의 <추방>(2013. 은행나무)도 그러하다. 정치적 이념으로 발생한 전쟁에 휩쓸린 처참한 삶을 보여준다.

 소설은 1930년부터 1990년대까지 소련과 독일의 지배를 받은 에스토니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역사 속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리데’와 ‘자라’, 두 명의 화자를 내세워 들려준다.

 1992년 남편이 죽고 혼자 사는 알리데는 집 앞에서 피투성이의 낯선 젊은 여자 자라를 발견한다. 통제 받는 생활 속 감시자가 아닐까 의심하지만 자라를 돌본다. 자라는 알리데에게 남편과 여행 중 길을 잃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외할머니와 엄마를 소련에 남겨 두고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떠났지만 창녀로 살아야 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외할머니가 준 단 한 장의 사진 속 이모할머니 알리데를 찾아온 것이다.

 알리데는 자라가 거짓말을 한다는 걸 모른 척한다. 자라를 통해 먼 기억 속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오래전 형부 한스에게 언니 잉겔의 소식을 거짓으로 전했다. 그렇다. 잉겔은 자신이 사랑한 한스를 빼앗았다. 한스는 에스토니아의 자유를 위해, 이념을 위해 싸웠고 그 과정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알리데는 어떻게 해서든 한스를 구해야 했다. 숱한 고문을 견디며 공산주의자가 되어 언니 잉겔과 조카 린다를 소련으로 추방한다. 한스를 숨겨두고 그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한스는 오직 잉겔 뿐이다.

 자라는 외할머니 잉겔에게 에스토니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곳에 땅과 숲에 대해, 그곳에 남겨둔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들었다. 포주의 눈을 피해 탈출한 자라가 에스토니아를 선택한 건 운명적 끌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리데는 잉겔을 부정한다. 자신이 저지른 잔혹한 일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라는 수십 년 전 잉겔과 알리데가 마주했을 부엌, 집 안 곳곳에서 외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린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자매가 함께 했을 평범한 일상을 말이다.

 ‘자라는 통을 더듬어 보았다. 냄새를 맡아 보았다. 가장자리에 뭔가 말라붙어 있었다. 이스트 반죽? 할머니가 만든 빵을 만들었던 그 반죽일까? 이틀하고 반나절,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반죽을 치대기 전 천을 덮어 뒷방에서 이틀하고 반나절 숙성한다. 반죽이 익어 가며 빵 냄새가 방 안을 감돌게 되지. 그러다 사흘째가 되면 반죽을 치댈 때가 된 거야. 할머니는 땀 맺힌 이마로 반죽을 주무르고 꼬고 쿵쿵 쳤겠지. 이 먼지에 덮인 마른 반죽은 수십 년 동안 쓰이지 않았으리라.’ 272쪽

 알리데는 이념이나 정치를 알지 못했다. 다만 사랑하는 한 남자를 원한 게 전부였다. 평생 잉겔과 린다를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때문에 알리데에게 자라는 잉겔이었고 한스였을 것이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라를 지켜야 했다.

 시대를 오가는 장면구성은 드라마처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구성이지만 쉽게 읽히거나 이해되는 소설이 아니다. 알리데의 간절한 사랑과 기구한 운명이 안타깝다. 알리데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삶이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은 지금, 더 이상 이념의 대립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삶이 붕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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