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이 완성되는 순간...
파국이 완성되는 순간...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3.07.2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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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명문장]<모던 하트>중에서

[북데일리] 정아은의 장편소설 <모던 하트>(한겨레출판. 2013)는 흔히 볼 수 있는 대도시 젊은이들의 사랑과 현 사회의 한 단면을 잘 그려낸 소설이다. 좋아했던 한 남자와의 이별의 순간을 속도감 있게 묘사했다.

“차갑고 건조한 손. 나는 한동안 그 손을 바라보았다. 저 손이 나를 쓰다듬기를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다. 기대했던 형태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바람이 실현된 적도 있었다. 나, 이 사람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만 아니었다면 그 밤에 ‘흐물’을 마로니에 공원에 혼자 두고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거나 안타까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차피 생이란 그런 것. 진행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경각심이 든다면 그것은 파국이라 할 수 없으리라. 완전한 격정과 놀라운 속도, 그리고 이전의 생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탈이 혼연일체를 이룰 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은 완성된다. 원인과 과정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인연이 이미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다음. 그 순간에 할 수 있은 일은 오직 한 가지,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받아들이고 다시 걸어가는 것. 생에 같은 순간이 두 번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파국으로 인한 교훈도 실은 불가능하다고 해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를 원망하거나 스스로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후일담이다.

나는 돌아서서 교보문고를 빠져나왔다. 오랜 전에 끊어졌어야 할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져 왔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인연일 것이다.“ (p.282~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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