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가 던지는 유쾌한 농담
젊은 작가가 던지는 유쾌한 농담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7.23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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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산의 <코끼리는 안녕, >

  ‘나는 나의 말들을 믿지 않았다. 현실은 소문이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현실과 환상은 구분되지 않았고 삶과 죽음은 뒤엉켰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 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살고 싶은지 죽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136쪽

 [북데일리] 거짓말은 나를 숨기기 위한 방패다. 하지만 나를 감추고자 하는 마음을 아는 이에게 거짓말은 진실이 되기도 하다. 그러니까 어떤 이는 거짓말을 통해 나를 멀리하고 어떤 이는 거짓말을 통해 나와 가까워진다는 말이다. 그 두 관계는 애정의 존재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이종산의 <코끼리는 안녕,>(2012. 문학동네)속 주인공 마리의 삶은 곧 거짓말이다. 무엇 때문에 마리가 거짓말을 시작했는지 작가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의 장면을 다 보여주지 않고 모호한 상황만 이어간다. 어쩌면 이러한 전개가 이 소설의 특징인지도 모른다. 짧은 문장을 이용해 감정을 전달한다.

 마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관을 만드는 여자다. 아버지는 죽고 엄마와는 떨어져 지낸다. 학창 시절부터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 의도적으로 속이려 한 게 아니다. 어느 순간 그렇게 시작됐고 멈출 수 없었다. 동물원에서 일하는 민구는 그런 마리를 이해하려 애쓴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결국 그 역시 마리를 떠난다.

 말하는 코끼리 우리 앞에서 마리는 드라큘라를 만나고 그의 지난 삶을 듣는다. 오래 전 그가 사랑한 미라라는 여자와 환생이라는 남자의 이야기. 그가 간절히 그 여자를 찾고 있다는 걸 알지만 마리는 민구와 미라의 관계를 말하지 못한다. 코끼리가 죽고 그 우리 앞에 있었다는 이유로 마리는 조사를 받는다. 민구는 미라와 함께 마리를 데리러 온다. 그랬다. 마리는 드라큘라와 함께 있는 게 좋다. 거짓이 아닌 이야기, 아무 의미가 없는 이야기를 그와 나눌 수 있으니까.

 마리와 드라큘라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서로를 길들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누군가를 길들이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온전한 나를 보여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소중하다. 마리에게 드라큘라가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그를 위해 관을 만든다. 그가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드라큘라 옆에 나란히 누웠다. 드라큘라가 관 뚜껑을 닫았다. 안에서 여닫기 편하도록 손잡이를 만들고 잠금장치도 해뒀다. 드라큘라가 관을 안에서 잠갔다. 나는 불편해졌다. 잠금쇠 쪽으로 손을 뻗었다. 드라큘라가 내 손을 붙잡았다. 내 숨소리가 들렸다.’ 123쪽

 소설엔 분명 드라큘라가 등장하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다. 마리가 코끼리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점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말하는 코끼리의 등장부터 판타지 이미지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깔고 그 위에 무심한 듯 경쾌한 대화를 툭툭 던진다.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는 직접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믿고 그것에 속지 않는가. 우리 삶 속에 부유하는 수많은 이야기처럼 말이다.

 ‘-마늘 먹을 줄 알아요?

 -돈 떨어지면 마늘 까.

 -햇빛은 괜찮아요?

 -오늘은 괜찮아. 일 년에 하루는 낮에 돌아다닐 수 있어.

 -보통 땐 관에만 있어요?

 -낮에 보통은.

 -갑갑하겠다.

 -십오 년 넘게 관에서 나오지 않은 적도 있는데 뭐.’ 31쪽

 이종산은 젊은 작가다. 아니 어린 작가라는 말을 선택하는 게 옳겠다. 한데 거짓말이나 농담이 힘겨운 삶의 순간을 견디게 한다는 것을 아는 듯하다. 이토록 놀랍고 유쾌한 농담을 건네는 걸 보면 말이다. 그녀의 두 번째 농담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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