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혜경 첫 산문집 '어딜 펴도 온기 가득'
소설가 이혜경 첫 산문집 '어딜 펴도 온기 가득'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7.17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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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걷다가, 문득>...읽다보면 두둑해지는 '마음 지갑'

 

 [북데일리] 살다보면 사소한 감정으로 선을 긋는다. 때로 그 선은 거대한 벽으로 변하고, 단번에 무너지기도 한다. 사람 사는 게 다 법칙처럼 정해진 게 아니듯. 삶이란 참으로 알 수 없다. 이혜경의 <그냥 걷다가, 문득>(2013. 강)에서 그 삶의 지혜를 마주한다. 제목처럼 산문집은 일상의 편린들이다.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골에서 태어나 형제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이야기, 누구나 부러워하는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책을 선택한 일, 타국에서의 생활, 낯선 여행지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에게서 받은 따뜻한 마음들이 가득하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건 아니다. 낡은 구두를 버리지 못하고 오랜 이웃들과 산행에서 함께 밥을 먹는 즐거움, 15층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햇살에 대한 경이로움, 한의원을 찾는 할머니를 도와드리며 든 생각 등 아주 소소한 것들이다. 짧은 글 속에 사람들과 사물들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가깝다는 것, 누군가를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얼마나 무례를 범하기 쉬운 것일까. 우리 사이에 이런 것쯤은 이해해주려니 하면서 무심히 흘린 말은 경우에 따라 날카로운 가시가 되기도 한다. 별 의미 없이 한 말이 누군가에겐 크나큰 울림을 주고 한 시절을 견디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듯.’ (29~30쪽)

 가족과 친구라는 이유로 함부로 굴었던 시간들, 나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았을 이들을 떠올린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해서는 안 될 말이 있고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는 걸 몰랐던 것일까. 이런 글귀에서 가슴은 뻑뻑해진다. 휴가 대신 선택한 사찰 수련회의 마지막 날 1,080배를 하면서 바라 본 밤하늘. 글을 읽는 동안 저자의 눈물이 내게로 스며든다.

 ‘밤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밝게 혹은 느릿하게 빛나는 별들. 밝게 빛나든 흐릿하게 가물거리든 그 빛으로 제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는 별들.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그만 더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새벽에 가까운 깊은 밤, 벌벌 떨리는 다리는 가까스로 일으켜 절하는 사람들. 성별도 나이도 하는 일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품고 있을 간절함이 사무치고, 살아 있는 목숨들이 그렇게도 애틋했다. 그동안 살아오며 인연 맺은 사람들, 그들에 대한 사랑이며 미움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동안, 내 안의 무언가가 녹아내렸다. 그 별 총총한 밤, 촛농처럼 녹아 흐른 것은 아마도 내 아집이었을 것이다.’ (249쪽)

 어디를 펼쳐 읽어도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책이다.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하루를 보내고 일기처럼 써내려 간 글에서 하루를 돌아보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떤 모양, 어떤 크기의 마음 지갑을 갖게 될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노년이 되어 지갑이 얄팍해졌을 때, 그럴 때 열 수 있는 든든한 뒷주머니는 아마 ‘마음의 지갑’일 것이다.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그 숱한 경험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곰곰 짚어보고, 걸은 길과 걷지 않은 길을 두루 살피다 보면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지고 발효해서 용수 속의 술처럼 맑은 무엇이 고일 것이다. 그건 세상을 살아낸 이들의 지혜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마음의 지갑을 가득 채운 그 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된다.’ (272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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