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숨겨진 벙커에서 사는 그들
한강 숨겨진 벙커에서 사는 그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7.10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십대의 고민과 방황 담은 추정경의 >벙커>

 [북데일리] 청소년 문학의 인기가 높다. 그만큼 십대의 고민과 방황이 심각하다는 증거다. 활화산 같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제4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이름은 망고>의 작가 추정경의 <벙커>(2013.놀)를 통해 그 방법에 한 발짝 다가선다.

 소설은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시작한다. 반 아이들을 괴롭히고 돈을 갈취하는 하균을 상대로 아이들이 집단 폭행을 한 것이다. 화자인 ‘나’는 엉겁결에 동참했고 하균은 심각한 상태다. 동영상은 주동자를 ‘나’로 지목한다.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저녁 7시 55분 한강 노들섬으로 와!’ 란 문자가 도착한다. ‘나’는 호기심과 두려움에 그곳으로 향하고 한강으로 뛰어드는 아이를 발견한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물속으로 따라 들어가다 벙커를 만난다.

 한강 교각의 숨겨진 공간, 벙커엔 ‘나’와 비슷한 메시와 몸이 아픈 일곱 살 꼬마 미노가 산다. 메시는 한 달 동안 동거를 허락한다. 벙커는 외부와 차단된 독립된 공간이면서 모든 걸 자급자족한다. 메시가 병원 중환자실 환자의 운동화를 빨아서 생활비를 충당했고 전기는 자전거를 돌려 사용한다. 메시와 함께 운동화를 수거하고 배달하다 하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다 하균의 일기를 통해 하균은 부모님과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권위적인 아버지와 그를 두려워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하균은 숨을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점점 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 이라는 말에는 그 사람을 알기까지 ‘시간’ 과 ‘노력’ 을 들이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이해 가능한 존재가 된다는 함정이 있다. 그 사람의 과거, 자라 온 환경, 주변 사라들과의 관계 따위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이 어려운 것인데, ‘알고 보면 좋은 사람’ 이라는 결론에는 ‘이해와 공감이라는 힘든 과정을 거치면’ 이라는 말이 쏙 빠져 있는 셈이다.’ 106쪽

 벙커의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그곳에 김 할아버지와 김 사장이라는 외부인이 들어오면서 벙커는 위기에 처한다. 메시는 ‘나’를 부정하면 결국 두 사람의 모습이 ‘나’의 미래가 될 거라 말한다. 메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지만 벙커를 폐쇄하는 그의 결정을 따른다.

 짐작했겠지만 벙커는 가상의 공간이다. 그러니까 벙커는 마음의 공간인 것이다. 상처로 얼룩진 나를 어루만지고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말이다.

 작가 추정경은 소설을 통해 십대에게 숨 쉴 수 있는 공간, 벙커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떤 공간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어른일 수도 있고, 책이나 영화, 음악, 춤일 수도 있다. 벙커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지만 벙커를 인정하는 순간, 어른들을 향해 닫힌 마음은 조금씩 열릴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