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삶을 아름답게 그려내다
흔들리는 삶을 아름답게 그려내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7.06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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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매력적이고 황홀하지만 쉽지 않은 소설

 [북데일리]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로 잘 알려진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사랑의 도피>(2013. 시공사)가 재출간되었다. 새로운 표지에 단편 <할례>가 수록되었다. 소설 속 인물은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갈등의 중심에 있다. 그러니까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실이 아닌 약간의 과장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독일이라는 배경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베를린 장벽에 무너진 후 동독과 서독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외도>에서 화자와 스벤은 체스를 두는 친분을 쌓는다. 스벤의 아내 파울라와 딸 율리아와 한 가족처럼 지낸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동독과 서독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어쩌면 그건 평생 풀리지 않는 숙제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장벽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 사이의 우정을 저편 당신들의 우정이나 이곳의 우리들 사리의 우정처럼 여길 수도 없구요.” (84쪽, 외도 중에서)

스벤과 파울라는 각자 대학에서 강의를 맡으며 동독이 아닌 독일인으로 정착하는 듯하다. 그러나 스벤은 비밀경찰에게 화자와 파울라에 대한 정보를 은밀하게 제공한다. 과거 정당에서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것,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이 대해서 말이다. 이 일로 셋의 관계는 어긋난다. 스벤과 파울라는 율리아의 부모의 역할에만 충실한다. 표면적으로 셋은 여전히 친구로 남았지만 결국 동과 서로 나뉘고 만 것이다.

 ‘장벽이 무너지던 겨울을 동서독 사람들 사이의 호기심으로 물든 사랑의 봄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던 그런 것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러던 중 낯설게, 자기 것과 다르게 그리고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만 여겨지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가깝게 평범하게 그리고 성사시게 느껴졌다. 세면대에 떨어져 있는 여자친구의 검은 머리카락처럼, 혹은 그녀와 함께 산책을 할 때에는 마음에 들지만 함께 쓰고 있는 아파트에 있을 땐 신경을 건드리는 여자친구의 덩치 큰 개처럼. 호기심의 대상으로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혼돈 속에서 어떻게 함께 삶을 꾸려 가느냐에 있다. 물론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아직 관심이 있을 경우에.’ (125~126쪽, 외도 중에서)

 <할례>는 유대인 여자와 독일인 남자의 사랑을 통해 이념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전쟁과 이념이 삶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세밀하게 그려낸다. 안디와 사라는 뉴욕에서 만났다. 둘은 아주 잘 통하는 사이다. 안디는 사라의 가족을 통해 유대인의 의식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유대인과 독일인의 역사라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함께 독일 여행을 다녀온 후 골은 점점 깊어간다.

 “무엇보다 너희는 나를 편견을 갖고 대해. 너희는 독일인들에 대해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어. 그러니까 너희는 나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는 거야. 그러므로 너희는 더 이상 나한테 관심을 가질 필요 없는 거지.”

 “우리가 너한테 크게 관심이 없다고? 네가 우리한테 갖고 있는 관심 정도도 안 된다고? 그런데 왜 우리는 네가 멀리 떨어져서 우리를 시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거지? 그리고 왜 그 차가운 반응을 독일인들한테만 느낄까?” (319~320쪽, 할례 중에서)

 안디는 사라에게 자신의 사랑을 확인시키고 싶다. 해서 유대인의 의식인 할례를 감행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안디는 그녀를 떠난다. 그들에게 전쟁은 아무렇지도 않은 과거 역사의 일부가 아니라 현재였는지도 모른다.

 아내가 죽은 후 다른 남자의 존재를 알고 혼란스러운 남편의 심리를 다룬 <다른 남자>, 세 여자 사이를 오가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위험한 남자의 이야기 <청완두>, 무의미한 결혼 생활이 아닌 진짜 삶을 찾기 위해 아내를 떠나는 <주유소의 여인>속 인물의 삶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삶을 흔드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이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한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런 흔들리는 삶을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아름답게 그려낸다. 여전히 매력적이고 황홀하지만 쉽지 않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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