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꿈같은 소설
거대한 꿈같은 소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7.04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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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미칠 수 있겠니>

 [북데일리] 김인숙의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2011. 한겨레출판)엔 같은 이름을 가진 남녀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도서관에 근무하는 ‘진’과 가구 회사에 다니는 ‘진’의 사랑은 운명처럼 여겨졌다. 나를 부르는 건, 그를 부르는 소리였고, 나를 향한 고백은 나의 고백이었다. 타인들은 그녀를 진이라 불렀고, 그에겐 성을 붙여 유진이라 불렀다. 사랑했으니 함께 살고 싶었고 영원할 꺼라 믿었다. 결혼 후 해마다 휴가를 떠났고 아이를 간절하게 바라지 않았다. 휴가로 다녀온 이국의 작은 섬으로 유진이 떠나기를 결심했을 때 이별은 시작되었다. 유진이 섬에 살기 시작하고 잠시 귀국했을 때 진은 이별을 실감한다.

 소설은 7년 전 섬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매년 섬을 찾아오는 진의 상황을 과거와 현재로 오가며 이야기한다. 유진은 집 안 일을 돌봐주는 소녀와 사랑에 빠졌고 진이 알게 된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분노, 절망으로 진은 소녀를 죽이고 싶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소녀는 피를 흘리며 죽었고 유진은 사라졌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소녀를 짝사랑한 소년이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그곳에 소년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진에게 동료, 가족, 친구들은 남편과 그의 여자와 아이까지 죽였다고 말했다. 유진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진은 해마다 섬에서 그를 찾아 다녔다. 섬에서 이야나의 택시를 타게 된다. 이야나는 진의 모습에서 절망과 슬픔을 보았다. 그녀에게서 자신을 본 것이다. 사랑했던 수니가 자신을 떠나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그녀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평온한 섬에 지진이 일어나자 이야나는 가장 먼저 수니에게 연락을 했고 그녀를 찾아 나셨다. 그리고 진이 보낸 문자를 본다. 전쟁터가 된 섬엔 삶과 죽음이 함께 있었다. 수니는 그 상황에서도 이야나가 아닌 남편을 선택한다.

 ‘세상의 모든 말할 수 없는 것들 사이, 세상과 세상 사이의 틈, 그들은 지금 그런 곳에 있다. 봄, 모든 틈이 메워져 새 잎이 피어나고, 얼었던 흙까지 몸을 바꾸는 계절이라고 했다. 모든 갈라진 것들이, 다시 견딜 수 없는 열망으로, 서로를 끌어당기겠지. 그러다가 못 견디게 되면 서로를 밀어내고, 갈라지는 것……. 바다 속의 거대한 판은 말이 없다. 아니, 말하지 않는 것이다.’ 213~214쪽

 이야나는 7년 전의 그 살인 사건을 떠올렸고 유진을 기억했다. 그에게 소녀를 소개 시켜준 이가 바로 이야나였다. 죽었을지 모를 유진을 찾아 헤매는 진은 수니를 향한 간절한 그것이었다. 자신의 사랑과의 이별을 인정해야 할 때가 왔음을 이야나도 진도 알고 있었다.

 진은 이 섬을 원망하고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 시절에 이 섬에 오지 않았다면, 그들의 사랑은 깨어지지 않았을까. 인공수정으로 태어나고 부모의 의지대로 살았던 유진에게 언젠가 그 모든 것과 분리되고 싶은 욕망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과 같은 이름의 진을 포함한 모든 것에서 말이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할 생각인지, 무엇을 할 작정인지는 몰랐어요. 이렇게 많은 것이 변해버린 지금,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고, 모든 것이 다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지금, 당신을 만난다고 해도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어쩌면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더라도 우리, 말은 나중에 해요. 내가 당신의 손을 잡을게요. 내가 그냥 당신의 손을 잡을게요.’ 291쪽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꿈같다. 이국의 섬이라는 공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보여주는 몽환과 혼돈, 불안한 삶, 간절하게 사랑을 찾아 끝없이 걷는 사람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견디고 살아내려면 무언가에 미쳐야 할 것이다. 진과 이야나가 살아야 할 날들은 위로할 것은 사랑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결국 사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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