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명문장> 은희경의 <지도 중독> 중에서
[북데일리] 소설을 읽다 보면 절로 빠져드는 부분이 있다. 은희경은 소설 <지도 중독>에서 인물의 갈등이나 사건 없이 하나의 상황으로 집중도를 높인다. 깊은 산 속에서 곰과의 첫 대면, 두려움과 떨림을 황홀하게 묘사한다.
‘침엽수의 잎들은 녹색으로 반짝였고 빽빽이 서 있는 나무둥치 아래 카펫 같은 풀밭 위로는 검은 그림자들이 길게 길게 늘어졌다. 그 안에서 길고 아름다운 갈색 털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곰이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했다. 숨이 멈출 듯했지만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노란 민들레 앞에 멈춰선 곰은 냄새를 맡듯이 조용히 고개를 내밀어 무심한 표정으로 그것을 꺾었다. 나는 전율을 느꼈다. 자연 상태로의 존재, 그 아름다움과 천연함, 그리고 위엄에 압도되었다.’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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