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손이어요. 만져주어요”
“저의 손이어요. 만져주어요”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3.05.24 1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속의 명문장]<바람을 담는 집>중에서

[북데일리] 성인 문맹자가 글을 읽게 되는 순간 그 기쁨은 어떠할까? 사람은 태어나서 일정 시기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말을 한다. 하지만 읽기와 쓰기는 따로 배워야 한다.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가 <바람을 담는 집>(문학동네. 1996)에서 들려주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60년대 그가 군복무를 하며 성인 문맹자들에게 글을 가르쳤을 때의 일이다.

“글자를 깨치는 것이 느린 피교육자들은 가령 고향에 있는 자신의 아내에게서 편지가 오면 나에게 그 편지의 내용을 읽어달라고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사정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부부 사이의 가장 은밀한 마음의 표현을 제3자를 통해서 해독해야 하는 딱한 사정에 내가 참여한 것이다.

하루는 봉투 속에서 편지를 꺼냈더니 백지 위에 손바닥을 펴서 짚은 채 각 손가락의 윤곽을 따라 연필로 서투르게 줄을 그은 손의 그림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그 밑에는 어렵사리 판독한 결과 “저의 손이어요. 만져주어요”라는 뜻으로 읽혀지는 애틋한 글이 딱 한 줄 쓰여져 있었다. 내가 읽은 것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사랑의 편지 중 하나였다.

마침내 그 편지의 수신인이 더 이상 나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도 아내의 편지를 읽을 수 있게 된 날이 왔다. 그날 그는 아내의 편지를 손에 펴든 채 감격하여 큰 소리로 울었다. 거룩한 독자들의 대열 속으로 들어가는 입문의 통곡이었다. (중략) 내가 지금까지 남을 가르치는 일에서 이만큼 보람을 느낀 일은 한 번도 없었다." (p140~p141)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