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수많은 이름의 비가 내린다
인생에는 수많은 이름의 비가 내린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5.23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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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그치지 않는 비>

 

[북데일리] 살면서 경험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니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게 맞겠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이 그렇다. 누구나 죽음을 통한 이별을 가장 두려워한다.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이별이니 소년에겐 얼마나 가혹한 일일까. 소년은 여행을 하자는 형의 말에 길을 나선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받은 보험금을 술로 탕진하며 사는 아버지를 남긴 채. 자신을 만류하는 상담 선생님을 뒤로 하고 학교를 자퇴했지만 어른이라 부를 수 없는 열아홉 살 소년은 그것을 ‘가출’ 이 아닌 ‘여행’ 이라 말한다. 어린 시절 같은 학교를 다녔던 짝 19번을 만날 뚜렷한 이유가 있다.

 제 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작 <그치지 않는 비>(2013. 문학동네)속 주인공 소년은 남쪽으로 향하는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모두 어른의 범주에 속한 사람들로 그들의 시선으로 그를 본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소년은 가출을 한 비행 청소년에 불과한 것이다. 예상했듯 편안한 여행이 아니다. 대합실에서 쪽잠을 자고 화장실에서 겨우 세수를 하고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운다. 형은 동생을 바라보기만 한다.

 여행 시작부터 내리는 비는 그치지 않고 열다섯 살로 보이는 외모 덕분에 불편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19번을 만나기 전에 가방 속 돈을 잃어버리고 의사였던 삶을 견딜 수 없어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 풍선을 주는 우울한 광대, 소년을 잃어버린 어린 양으로 여기며 자신의 과거사를 드려주며 설교를 하는 목사도 만난다. 기억을 잃은 할머니는 소년에게 우산을 주며 이런 말을 건넨다.

 “어떤 것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잊을 수가 없어요.” (97쪽)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비가 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해요.”(100쪽)

 잊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머니의 말처럼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소년에게는 어머니의 죽음이 그렇다. 자신이 아니라 형이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켰더라면 형제의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르니까. 소설은 조금씩 소년의 상처를 보여준다. 자신과는 다르게 여전히 고등학교 3학년인 19번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머니가 죽은 후 엉망이 된 학교 생활, 전학, 자퇴에 이른 일련의 과정을 들려준다. 어머니의 부재는 아버지와 형에게도 거대한 절망과 고통이었다. 때문에 아들과 동생의 마음을 만져 줄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소년은 스스로 슬픔을 견뎌야 했다.

 ‘기억은 지워지는 게 아니다. 그냥 끊임없이 만드는 것이다. 만들고 또 만들고. 그러는 동안에도 만들어진 기억은 거기에 있다. 그것들은 늘 나의 곁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조금씩, 그렇지만 확실하게 마음속으로...’ 241쪽

 소년의 여행은 계속되고 비는 그치지 않는다. 여행을 하는 동안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비를 맞으며 비가 그치기를 소망하는 마음과 마주한다. 분명 여행도 비도 그칠 터. 식상한 말이지만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이름의 비도 그럴 것이다. 어떤 비는 폭우일 수도 있고 어떤 비는 무지개를 안겨줄 수도 있다. 그것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며 인생이라고 담담하게 작가는 말한다.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는 비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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