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의 후회없는 글쓰기
폴 오스터의 후회없는 글쓰기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3.05.15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스트잇]<빵굽는 타자기>중에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p5)

[북데일리]  <빵굽는 타자기, 부제: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열린책들. 2000)의 서두에 나오는 글이다. 책은 폴 오스터가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할 무렵의 일들을 담아낸 자전적 이야기다. 젊은 시절 그는 생활을 위해 무엇이 든지 써야 했고, 대본 각색, 비서, 번역 등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한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글을 써야하는 사람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출판사에서 번역을 맡긴 책들은 하나같이 재미없고, 작품 수준도 그저 그런 정도에서부터 형편없는 저질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낮은 편이었다. 번역료도 형편없었다. 경력이 쌓이면서 번역료는 차츰 올라갔지만, 우리가 한 일을 시간 기준으로 셈하면 최저 임금보다 겨우 한두 푼 많은 정도였다. 해결책은 번역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숨쉴 겨를도 없이 계속 해대는 것뿐이었다. 그보다 훨씬 여유있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리디아와 나는 체계적으로 일에 착수했다.

출판사에서 책을 건네받으면, 우리는 일감을 둘로 쪼갰다.(중략) 그리고 하루 작업량을 정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작업량은 채워야 했다. 날마다 너무나 많은 양을 번역해야 했고, 일할 마음이 내키든 말든 날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정해진 작업량을 처리했다. 차라리 프라이팬에서 햄버거를 뒤집는 편이 더 수지맞는 일이었을지도 모르나, 적어도 우리는 자유로웠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나는 직장을 때려치운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좋든 나쁘든, 이것이 내가 선택한 생활 방식이었다. 돈벌이를 위해 번역을 하고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쓰느라, 그 몇 년 동안은 책상 앞을 떠난 순간이 거의 없었다. 거의 온종일 종이에 낱말을 적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돈벌이를 위해 평론을 쓰지는 않았지만, 평론을 발표하면 대개 고료를 받았다. 그 부수입도 제법 쏠쏠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은 전쟁이었고, 극빈보다 조금 나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아내와 둘이서 이 줄타기 곡예를 시작한 지 반 년 뒤인 1975년 가을에 운이 트였다. 잉그럼 메릴 재단이 5천 달러의 창작 지원금을 준 것이다.“ (p133~p135)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