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에만 존재하는 행복
가족사진에만 존재하는 행복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5.02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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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척 아름다운 소설

  [북데일리] <추천> 동화 속에 나오는 예쁜 집, 그 앞에는 몇 그루의 단풍나무가 있다. 저런 집에 산다면 행복한 날들이 이어질 듯하다. 과연 그럴까? 토마스 H. 쿡의 <붉은 낙엽>(고려원북스. 2013)은 집 밖의 이야기가 아닌 집 안에서 벌어지는 추리소설이자 심리소설이다.

주인공 에릭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그의 아내 메러디스는 대학 강사다. 둘 사이엔 평범한 중학생 아들 키이스가 있다. 누가 보더라도 단란한 가족이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에이미 부모의 부탁으로 키이스는 아이를 돌봐주고 돌아온다. 다음 날 에이미가 사라지면서 키이스는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에릭은 아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에릭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키이스의 지난 행동에 대해 의심을 한다. 그러면서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와 자동차 사고로 죽은 어머니, 어린 나이에 죽은 동생 제니, 혼자 사는 형을 생각한다. 아버지와 자신의 사이를 돌아본 것이다.
 
 소설은 실종된 에이미의 진범을 찾는 과정과 가족이라는 큰 퍼즐을 하나씩 맞추며 이어진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고통과 분노, 용의자로 몰린 키이스를 지키려는 에릭 부부의 대립이 팽팽하게 흐른다. 에릭이 알지 못했던 키이스의 모습들과 하나씩 드러나는 증거들로 독자를 혼란시킨다.  
 
 작가는 잔인하게도 한 가족이 어떻게 와해되는지 그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들에게 행복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처럼 말이다.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가족은 서로를 보듬어 껴안거나 절대로 다시 붙일 수 없는 수 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지기도 한다.

 ‘나는 창 앞에 남아서, 아침 햇빛이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드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 집을 둘러싼 숲의 작은 조각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잠시 나는 우리가 이곳에 이사 오던 날을 회상했다. 트럭에서 짐을 부리는 동안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떤 시간을 가졌던가. 날은 또 얼마나 화창했던가. 그날 우리가 이 완벽한 숲에 함께 모여, 모두가 웃고 또 웃으며 얼마나 행복해 했던가. 167쪽’

 유괴라는 섬뜩한 소재로 시작되었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척 아름다운 소설이다. 생생하게 포착한 불안과 주인공의 내밀한 감정이 잘 표현되었다. 더불어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한 게 무엇인지 묻는다. 가족이야말로 거대한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각인시킨다.

 ‘중요한 것은 에이미가 카렌 지오다노의 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그즈음 동네의 길을 걸어가다 느낀 것은, 멀리 높은 곳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모래알처럼 구별이 안 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어떤 얼굴이든 독특하고 딱 하나뿐이라는 것이었다. 그 얼굴들은 엄마의 얼굴이거나 아빠의 얼굴이고, 누이 혹은 형제의 얼굴이며, 딸의 얼굴이거나 아들의 얼굴이다. 그 얼굴에는 수많은 기억들이 아로새겨져 있어서 다른 누구의 얼굴과도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애착의 핵심이고, 그 애착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질이다. 우리가 이런 애착의 기억들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무관심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무표정한 눈으로 서로를 알지 못한 채, 가장 기초적인 영양분을 찾아 바다를 떠올게 될 것이다.’ 19~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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