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
편지로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3.15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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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을 파고든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북데일리] <고백>으로 잘 알려진 미나토 가나에의 <왕복서간>(2012. 비채)는 제목 그대로 편지글 소설이다. 세 편 모두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일에 대한 궁금증을 편지로 묻거나 고백하는 이야기다.

 첫 번째로 <십 년 뒤의 졸업문집>은 주인공 에쓰코가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 후 보낸 편지다. 편지는 방송반 시절 친구 7명의 즐거운 추억으로 시작하지만 점점 기묘하게 흘러간다. 에스코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자이키의 행방불명 소식에 대해 묻는다. 모델로 활동했던 자이키가 얼굴을 다치게 된 경위를 따진다. 사고가 아니라 함께 있던 친구 중 하나가 고의로 밀어 넘어뜨린 게 아니냐고 슬쩍 떠 본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이십 년 뒤의 숙제>는 고등학교 교사인 아쓰시가 퇴직 후 병상에 계신 스승을 대신 해 여섯 명의 제자들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내용이다. 이십 년 전 여섯 명의 제자들은 선생님과 함께 산에 올랐다. 그날 제자와 선생님의 남편이 함께 물에 빠졌다. 남편은 죽고 제자만 살았다. 여섯 명의 제자들을 차례로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선생님께 편지로 전하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여섯 명의 기억은 달랐다. 누군가는 방관자로, 누군가는 피해자로, 누군가는 가해자라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은 가장 흡입력이 강하고 놀라운 이야기다. 두 편의 이야기와 달리 연인 사이에 오가는 편지다. 국제 자원봉사대에 해외 오지에 나간 준이치와 마리코는 중학교 동창이자 연인이다. 십오 년 화재에서 마리코를 구해준 후 준이치와 연인이 되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편지로 화재 사건에 대한 비밀을 털어 놓는다. 화재사고에서 마리코는 살았지만 다른 남학생은 죽었고 그와 갈등이 있던 친구도 학교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사건으로 기억을 잃은 마리코는 단순한 화재였다는 준이치의 말을 믿었지만 진실은 달랐다.

‘이상하지. 당신이 살인자라는 사실보다 내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더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니. ……참. 고마워. 이 말은 해도 되지? 십오 년 동안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지켜줘서 고마워. 거짓말해줘서 고마워. 당신은 아무 죄도 없으니까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당신이 죄를 뒤집어 쓸 일은 없어. 0을 곱한다는 건 이런 뜻이겠지, 준이치 선생님?’ 257쪽

세 편의 이야기는 모두 누군가를 향한 고백이며 용서다. 미나토 가나에는 일기처럼 써 내려간 편지를 소재로 심연을 파고든다. 잊고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며 서로에게 숨겼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달하는 편지의 묘미를 잘 살려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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