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벗고 아프다고 말하렴
가면을 벗고 아프다고 말하렴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3.06 2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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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 우리들의 상처...한강의 새 소설

 [북데일리] 산다는 건 가면을 쓰고 사는 건지 모른다. 그러니까 감정을 자제하고 숨기며 살고 있다는 거다. 오랜 기다림에 만난 한강의 세 번째 소설집 <노랑무늬영원>(2012. 문학과지성사)속 인물도 그렇다. 총 7편의 단편엔 버티고 견디는 삶의 상처와 회복이 있다.

「회복하는 인간」은 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다친 발목을 치료하다 입은 화상을 방치한 주인공 이야기다. 그녀가 화상을 입은 건 복숭아뼈만이 아니다. 지난 시절 언니와의 관계도 그러했다. 부모님과 남편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언니는 그녀의 상처를 보여주기도 전에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얼마나 힘든 날들을 버티며 살아왔는지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항상 앞이 보이지 않았어. 버텼을 뿐이야.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저 애써서 버텼을 뿐이야.’ <「회복하는 인간」, 32쪽>

 버티는 건 남편 대신 가계와 아이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훈자」, 이제까지 살았던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길을 떠나는「밝아지기 전에」의 그녀들도 마찬가지다. 안간힘을 쓰며 살지만 산다는 그 자체가 무의미할 뿐이다.

 표제작 「노랑무늬영원」은 그림이 전부였던 현영이 교통사고로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절망의 그녀에게 삶을 보여준 건 친구 소진의 아들이 키우는 도마뱀 ‘노랑무늬영원’이었다. 앞발을 잃은 도마뱀의 앞발이 다시 돋아나듯 그녀의 생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만일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을 가진 인간으로서 다시 살아나가야 한다면, 내 안의 죽은 부분을 되살려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부분은 영원히 죽었으므로. 그것을 송두리째 새로 태어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 <「노랑무늬영원」, 296쪽>

 ‘노랑은 태양입니다. 아침이나 어스름 저녁의 태양이 아니라, 대낮의 태양이에요. 신비도 그윽함도 벗어던져버린, 가장 생생한 빛의 입자들로 이뤄진, 가장 가벼운 덩어리입니다. 그것을 보려면 대낮 안에 있어야지요. 그것을 겪으려면. 그것을 견디려면. 그것으로 들어 올려지려면…… 그것이, 되려면 말입니다.’ <노랑무늬영원, 305>

 소설에서 마주하는 삶은 잊고 있었다고 여겼던, 그리하여 아무런 상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믿었던 나의 이야기이며 당신의 이야기다. 소설 속 그녀(그)를 부서지게 만든 건 대단한 것들로부터 시작된 게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무던하게 믿었던 미련함이나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하지 못한 채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삶의 균열은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되기에 우리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

 한강은 소설을 통해 그 작은 틈새를 발견하고 메울 수 있다고 말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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