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소와 전율! 문학의 재발견 `젊은낭독회`
폭소와 전율! 문학의 재발견 `젊은낭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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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6.2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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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서점을 가득 메운 관객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고즈넉한 단조의 기타 선율이 흐르고, 그 위에 연극배우 신안진의 독백이 겹쳐졌다. 시인 김경주의 시 ‘비정성시(非情聖市)’가 일인극으로 재탄생 되는 순간이었다.

국내 유일의 책 뉴스 사이트 북데일리(www.whitepaper.co.kr)와 서점 이음아트(http://blog.naver.com/eumart)가 주최한 제1회 젊은 낭독회 ‘질주하는 젊음!’이 지난 20일 열렸다. 참여 작가는 시인 김경주와 소설가 김애란, 사회는 연출가 최창근이 맡았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번 행사는 연극, 음악, 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자리였다.

70여 명 관객의 호기심 속에 열린 이날 행사중 단연 압권은 연극배우들의 낭독. 특히 비정성시의 낭독은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했다.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2006)에 실린 비정성시는 22쪽에 이르는 산문시로 낭독 시간만 무려 30분이 걸리는 ‘낭독하기 쉽지 않은’ 시다.

하지만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관객을 찾기란 어려웠다. 침 넘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몰입된 모습이었다. 좌석이 부족해 서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 듣던 도중 눈물을 훔치는 독자도 보였다. 배우는 시의 애달픔과 비장감을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액션으로 오랜 시간 관객을 끌어안았다.

김애란의 소설집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 2007)에 담긴 단편 ‘칼자국’은 연극배우 서정연이 발췌 낭독했다. “아나운서를 방불케 하는 목소리”라는 사회자의 소개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투명했다. 작가의 반짝이는 문장은 좀 더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흡사 라디오극이나 오디오북을 연상케 하는 낭독이었다.

이렇게 배우들이 문학과 연극의 만남을 시도했다면, 북밴(리더 제갈인철)은 문학과 음악의 융합을 주도했다. 김경주의 시 ‘우주로 날아가는 방’과 김애란의 단편 ‘침이 고인다’를 각각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각각의 작품에 어울리는 가사와 멜로디, 리듬을 덧붙여 선보인 북밴의 음악은 행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며 박수를 받았다.

이런 배우와 밴드의 선물에 작가들 역시 낭독으로 답했다. 먼저 김경주는 산문집 <패스포트>(랜덤하우스. 2007)의 편지글 ‘나는 당신과 나의 ’사이‘에 숨는다’를 읽었다. “헤어졌던 여인과 현재 자신에 대한 생각이 나서 쓴 글”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김애란은 <달려라, 아비>(창비. 2005)의 단편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의 마지막 부분을 들려줬다. 작가는 “독자들이 들으면 행복해질 수 있는 구절을 골랐다”고 선택 이유를 밝혔다.

모든 낭독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가 30분간 이어졌다. 진솔한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작가와 독자들의 간격은 한층 좁혀졌다.

공식적인 행사가 모두 종료된 10시, 이별이 못내 아쉬운 독자들은 장소를 옮겨 작가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새벽 별이 보일 때가 되서야, 그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다음은 독자와의 대화.

[독자와의 대화-김경주]

질)비정성시를 어떻게 쓰게 된 건가.

답)대학교 4학년 때 구상했는데, 시를 염두 해 두고 쓴 건 아니다. 처음에는 모노 희곡 대본으로 계획했다. 그러다가 공간성 획득이 어려워, 졸업할 때 쯤 남길만한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적어갔다. 사실 사연이 많은 시다.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등단하고 나서는 분량 때문에 3년 동안 아무 곳에도 싣지 못했다. 그래도 지키고 싶었던 시여서 시집 계약 조건에서 빼지 않았다. 지금 보면 객기와 치기도 많은 시지만, 오래도록 뜨거웠으면 하는 시다.

질)독립영화 작업도 하고, 많은 일을 했다고 들었는데.

답)영화에 대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영화 일을 하는 친구와 같이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도와주면서 작업했다. 다양한 일에 관심을 갖는 건 시적인 느낌을 확장하고 싶어서다. 시가 형식에 머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시로부터 멀어지는 것도 형식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가 어떤 장르로든 전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질)시적인 느낌이라는 게 뭔가.

답)사실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이다. 영화를 보거나 사랑고백을 할 때 “시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보편율과 내재율을 뜻한다. 자신이 가장 설명하기 힘든 것에 대한 갈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독자와의 대화-김애란]

질)소설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경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답)정확하게는 몇 퍼센트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와 친구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소하고 시시해 보이는 것들에서 소재를 찾았다.

질)어떤 작품은 독립영화로도 만들어 졌다고 들었다. 수락할 때 잘못 표현될까봐 두렵지는 않았나.

답)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영상 쪽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면 이미지가 많이 떠오른다며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 얼마 전에는 ‘편의점으로 간다’가 라디오극으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민망하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다른 분들이 내 작품에서 뭔가를 하고 싶은 미적 충동이 든다면 좋은 일이다.

질)장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던데.

답)욕심 같아서는 올해 내고 싶지만, 진척 속도가 빠르지 않다. 태도에 대한 고민만 하는 중이다. 얼마 전에 이사를 갔는데, 아침에 창문을 열면 모텔의 하얀 침대 시트가 보인다. 그걸 보면서 “저들도 밤새 열심히 했구나, 나도 힘내서 써야지”하는 생각을 한다. 적당히 불안해하고 나를 믿으면서 써보려 한다.

질)글을 쓰다가 중간에 길을 잃으면 어떻게 대처하나.

답)그럴 때가 많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가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느낌은 짜릿하다. 그럴 땐 기다리기도 하고 지켜보기도 하는 편이다. 창작자라면 모두 그런 우연을 경험할 것 같다.

(사진=전소연 사진작가)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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