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갈채 쏟아진 `이색 낭독회`
[기자수첩] 갈채 쏟아진 `이색 낭독회`
  • admin
  • 승인 2008.06.24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수들은 앨범을 내면 콘서트를 하지만, 작가는 신간을 내도 썰렁해요”

소설가 김영하가 <빛의 제국>(문학동네. 2006) 출간기념 낭독회에서 했던 말이다. 계간지 ‘문학동네’ 에 냈던 글이지만 <검은꽃>(문학동네. 2003) 이후 3년 만에 낸 장편소설이니 감회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그는 자축을 목적으로 ‘스스로’ 낭독회를 추진했다. 블로그, 홈페이지가 워낙 인기다 보니 신청자가 폭주해 낭독회는 거의 하루 만에 마감되었다.

현장취재를 다녀오면서 느낀 점은 그의 말대로 신간을 내도 축하할 만한 ‘행사’가 아무것도 없는 작가들은 얼마나 서운할까 라는 것이었다. 긴 시간 ‘외로이’ 써낸 글이 책으로 나오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 ‘자축’ 아니라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기쁜 일 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축하하는 자리를 작가 스스로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영하야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작가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해도 ‘초야에 묻혀’ 글만 쓰는 작가들이 어찌 이런 행사를 스스로 열 수 있을까. 출판사가 홍보에 나서주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소위 ‘비인기 작가’인 경우 낭독회 같은 행사는 꿈도 못 꾼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작가브랜드를 ‘이용’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작가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책 홍보에 도움이 될 만큼 알려진 작가인 경우에만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 써온 공들여 써온 작품을 출간 하면서도 고작 인터뷰 한 두 번으로 축하예식을 끝내야 하는 작가들이 많다.

역사적으로 낭독회란 작가와 독자가 가장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문학행사의 하나로 이어져 왔다. 기원전 1세기, 독서가이자 유명한 저술가였던 로마의 ‘소 플리니우스’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즐거움’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으며 낭독의 중요성을 주창했다. 텍스트를 듣다 보면 청중들도 책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동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작가나 서적상, 출판업자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수요가 창출된다는 것이었다. 그의 관점에서는 대중들 앞에서 텍스트를 읽는 행위 자체가 출판의 첫 단계였던 셈이다.

단테, 시인 조프리 초서, 희곡작가 몰리에르 등이 낭독회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낭독했다. 작가 낭독회의 황금기였던 19세기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는 낭독회의 선발주자로 활동했다. 장소를 가리지 않았던 그는 창고, 무도회장, 서점, 사무실, 공회당을 전전하며 낭독을 즐겼다. 40여개 도시를 여행하며 80여 차례 진행했던 그의 ‘낭독회 여행’은 지금까지 유명한 일화로 전해 내려온다.

특이 한 것은 당시의 낭독회가 등장인물들의 역할을 작가가 직접 연기하는 연극형태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배우소질이 넘쳐 났던 디킨즈는 낭독회를 통해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다. 대중들은 작품에 완전히 몰입해 눈물을 흘리고 통곡까지 했다. 디킨스는 한 작품의 낭독과 몸짓을 연습하느라 최소 2개월 이상의 시간을 들였다.

낭독용 책 - 이런 여행을 위해 그 자신이 편집한 작품 사본 - 의 여백에는 자신이 내야 할 목소리를 기억하기 위해 “쾌활하게... 엄숙하게... 애조 띤 목소리로 신비감 넘치게,.,”라고 써놓았다. 몸짓을 위해서도 “아래로 손짓을 가리킨다 ... 몸을 전율 한다 ... 공포에 휩싸인다”로 적었다. 대중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낭독하는 행위 자체를 작가 ‘스스로’ 즐겼던 셈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낭독 현실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그것이 일부 작가들에게만 ‘특권’처럼 주어진다는 사실에서도 그렇고 단조로운 낭독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렇다.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열리는 낭독회의 기회는 극히 유명작가들에게만 주어지고 있으며 지방 도서관, 공공단체들을 중심으로 열리는 낭독회 역시 ‘대중화’라 불리기에는 지극히 부족한 실정이다.

낭독회를 대중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문학 사이트 ‘문장’(www.munjang.or.kr)은 문학과 음악을 조화시킨 새로운 낭독의 형태인 ‘문학나눔콘서트’를 열고 있고 작가 27명으로 이루어진 ‘편지쓰는작가들의 모임’ 역시 추계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김다은 교수를 중심으로 작품 낭독회를 준비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13일 열린 낭독회-북데일리 제1회 낭독연가 하성란의 <웨하스>(문학동네. 2006)를 진행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체험할 수 있었다. 작품 속 문장이 표현하는 소리를 음향으로 들려주는 시도를 했는데 이에 대한 반응이 무척이나 뜨거웠던 것이다. 낭독에 심취해 있는 사이 급작스레 들려오는 효과음에 일부 독자들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기도 했지만 그것이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지자 모두가 그것을 낭독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나중엔 글과 어우러진 소리에 푹 젖어들었다.

낭독자 하성란 역시 “중간에 음향효과를 넣은 것은, 낭독효과를 더 극대화시킨 것 같다. 낭독 중 숨을 고를 수도 있었고, 특히 장면이 전환되는 부분에서는 음향의 역할이 돋보였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텍스트와 소리가 조합된 이색 낭독회는 ‘뜬금없을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를 제치고 새로운 낭독 형태를 낳았다. 작가의 낭독으로만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낭독회와는 달리 작품 속 등장인물들에게 쓰는 편지를 낭독하는 독자 낭독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낭독회란 작가는 “수고했다”는 격려를 들을 수 있고 독자는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 육성까지 들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중요한 것은 관객의 수나 장소가 아니라 작품을 듣는 태도와 작품을 읽는 작가의 열의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낭독회를 통해 낭독을 대중화 시키려는 노력이다. 이런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누구나 낭독을 즐길 수 있고 문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면 침체 된 문학시장 또한 새로운 돌파구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가져보는 또 하나의 바람이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