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회의 역사]①작가가 직접 연기하다
[낭독회의 역사]①작가가 직접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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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6.2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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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 중 작가들의 낭독회는 독자들이 가장 반길 만 한 행사. 해외에 비하면 부족한 현실이지만 대형서점, 각종 문학단체, 공공도서관 등을 중심으로 점차 활성화 되고 있다. 낭독회의 가장 큰 매력은 작가들의 육성을 통해 책을 ‘듣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텍스트로만 접하던 책을 실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낭독회. 그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2005)에서 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연재 기사는 책을 바탕으로 고대로부터 이어진 낭독회의 역사, 그 흥미로운 변천사를 소개 한다.

①연기하던 작가들 - 로마

<독서의 역사>의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은 낭독회의 역사를 찾기 위해 A.D. 1세기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작가들의 낭독은 꽤 유행했던 행사였으며 낭독에도 작가와 청중 모두에게 엄중한 에티켓이 요구되었다. 청중들에게는 비평이 기대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가는 텍스트를 수정하기도 했다니 지금보다는 ‘훨씬’ 진보적인 형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독서가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플리니우스 카에실리우스 세쿤두스(미래의 독서가들에게는 A.D.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사망한 그의 박학한 삼촌 대(大)플리니우스와 구분하기 위해 소(小)플리니우스로 알려졌다). 대단한 독서가이자 낭독회 광이었던 플리니우스는 저자들의 낭독회를 높이 평가하면서 “이런 모임으로 인해 새로운 문학의 황금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며 “나는 문학이 번창하고 재능이 꽃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고 말하곤 했다.

지금의 낭독회와는 달리 ‘연기’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노력했던 작가들의 노력 덕에 낭독회는 그 형태가 매우 다양했다.

한 작가의 연기를 칭송하던 플리니우스는 “그는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낮추고 높였으며 고상한 주제에서 저급한 주제로 단순한 주제에서 복잡한 주제로, 혹은 가벼운 주제에서 심각한 주제로 넘어가는 일에도 능수능란했다. 낭독에 매력을 더하는 겸손함과 얼굴의 홍조와 예민함으로 인해 그 목소리는 더욱 도드라졌다. 나도 이유는 잘 모르지만 확신에 찬 모습보다는 어딘지 약간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작가에게는 더 잘 어울린다”고 평가했다.

플리니우스는 연설은 잘했지만 시낭송에는 자신이 없었던 독서광이었던 것 같다. <12황제 열전>의 저자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에게 “친구 몇 명을 불러 놓고 비공식 낭독회를 가지려는데 나의 노예를 이용하면 어떨까 싶다. 내가 선택한 노예도 훌륭한 독서가가 아니어서 친구들에게 예의가 아닌 줄은 아네만 그 사람이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는 이상 나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하네. 그 노예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뭘 할 것인가. 그게 문제일 것 같네. 방관자처럼 말없이 앉아 있어야만 하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그 노예의 말을 따라하는 것처럼 나도 눈과 몸짓과 입술로 그의 말을 따르는 것처럼 꾸며야 하나?”라는 고민을 털어 놓았다고 하니 말이다.

그는 낭독의 장점으로 ‘작가 본인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즐거움’을 꼽았다. 텍스트를 듣다 보면 청중들도 책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동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작가나 서적상, 출판업자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수요가 창출된다는 것. 그의 관점에서는 대중들 앞에서 텍스트를 읽는 행위 자체가 출판의 첫 단계였던 셈이다.

당시의 낭독은 대중들이 텍스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가 온몸으로 열연하는 ‘일종의 연기’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자신의 작품을 읽는 작가는 단어에 독특한 목소리를 실었고, 그에 걸 맞는 몸짓으로 단어를 살아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이런 연기는 작가가 텍스트를 잉태했던 바로 그 순간 마음에 담고 있던 풍경을 드러냈다. 이로 인해 낭독을 듣는 사람들은 그 작가의 의중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고, 텍스트가 진짜라는 확신을 얻기도 했다.

낭독회는 로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인들도 대중 앞에서 책을 읽곤 했다. 플리니우스보다 5세기 앞선 헤로도토스도 도시 이곳저곳을 여행해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올림픽 축제장에 무대를 마련해 놓고 그리스 전역에서 몰려든 청중들이 열광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작품을 읽었다. 그러나 6세기에 이르러서는 ‘교육받은 청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낭독회도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대중 낭독회에 로마인 청중이 모였다는 대목이 나오는 기록물 중 가장 오래 된 것은 그리스도교 시인인 아폴리나리스 시도니우스가 5세기 후반에 쓴 서한이다.

(②편에서는 단테, 초서, 루소의 낭독회가 소개됩니다.)

(사진 =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웅진지식하우스. 2006) 자료컷)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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