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글쓰기훈련]<561>필사-시, 이상한 언어
[365글쓰기훈련]<561>필사-시, 이상한 언어
  • 임정섭 기자
  • 승인 2013.02.15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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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365글쓰기훈련]은 매일 하는 글쓰기 연습 프로그램입니다. 오늘은 '시'(詩)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글을 필사합니다. 비유를 통해 시의 본질적 '기능'을 잘 풀어냈습니다. <싸우는 인문학>(반비. 2013)의 공동저자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의 글입니다. 

<561>시-이상한 언어

집에 도둑이 들면 곁에 있던 막대기라도 들고 휘둘러야 한다. 우리는 '언어'도 이런 식으로 사용한다. 위기에 처하면 다급하게 "도와줘"라고 외치고, 생존권을 위협당할 때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나하나 따져 묻는다. 그러니까 언어를 다른 연장들처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구란 늘 수행하는 기능을 통해 의미를 얻으며 기능을 상실했을 때 쓸모없는 것으로 버려진다. 해어지면 미련없이 던져버리는 헌 운동화처럼. 

그런데 어떤 이상한 언어가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왔다.'시'말이다. 이 언어는 도구처럼 일하지 않고 배짱이처럼 노래만 부른다. 예술가가 만든 항아리가 물을 담는데 쓰이지 않듯이, 이 언어는 도무지 쓸모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쓸모없는 돌멩이를 어루만지는 수석가처럼 별다른 용도없이 시어를 입에 넣고 사탕처럼 굴리고 또 굴린다.

그렇다면 시어는 경이로운 단맛을 우리 혀 위로 흘려보낼까? "이불 속에서 누군가 손을 꼭 쥐어줄 때는 그게 누구의 손이라도 눈물이 난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시인 가운데 하나인 김경주의 시구다. 저 구절은 적합한 인간관계에 대한 설명을 담지 있지 않고, 뭔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슬프로도 달콤한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듯 사람들은 저 구절에 입술과 혀를 가져가본다. 이 단맛의 정체는 무엇이기에 인류는 그토록 오랜 시간 시와 함께해왔을까? 오늘날 한국 시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시의 본성에 관한 이러한 원론적인 질문을 잊어선 안 되리라.

-임정섭 <글쓰기훈련소> 대표, 북데일리 아카데미 원장,

네이버 카페 <글쓰기훈련소>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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