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리쿠가 쓴 피터팬 "역시 다르네"
온다리쿠가 쓴 피터팬 "역시 다르네"
  • 북데일리
  • 승인 2007.02.2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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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온다리쿠의 소설 <네버랜드>(국일미디어. 2006)의 이야기를 꺼내볼 까 한다. 방학이 되었지만 딱히 돌아갈 ‘집’이라는 곳이 없는 네 소년들은 낡고 텅빈 기숙사에서 방학을 보내게 된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린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 때문에 겉모습은 어른에 가까운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혼자서 아픔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불륜 상대로부터 납치를 당한 경험이 있는 요시쿠니는 성인 여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만인이 부러워하는 여자 친구가 성인 여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어느 날 이별을 선언한다.

부모님이 동시에 돌아가신 미쓰히로는 여느 아이들처럼 공부하며 살기 위해 아버지의 본처였던 여자와 13살 때부터 육체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미쓰히로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간지의 부모님은 이혼 직전의 상태로, 누구와 생활할지 그 선택권을 간지에게 주었다. 그러나 간지는 어느 누구도 아닌 학교 기숙사를 택했다.

오사무는 어린 시절 욕조에서 감전사 당한 어머니를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하며 그 환영에 시달리고 있다. 항상 산만하고 친구들로부터 이상한 아이라는 얘기를 듣는 오사무는 방학이 되자 짐을 싸서 친구들이 있는 기숙사로 들어온다.

길 잃은 피터팬은 길 잃은 아이들의 집이 있는 네버랜드에서 살게 된다. 딱 한번 엄마를 만나러 집으로 간 피터팬은 굳게 닫혀 있는 창문과 이미 다른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를 발견하고는 상처만 입고 다시 네버랜드로 돌아오게 된다. 그후 피터팬은 엄마를 포함한 어른들이라는 존재는 아이들을 이용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길 거부하며 영원히 네버랜드에 남길 원한다. 그러나 웬디를 통해 사실은 엄마라는 존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그들이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기숙사는 네 소년들의 네버랜드인 셈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지금까지 꼭꼭 숨겨 두었던 이야기들을 서로에게 털어 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끝내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온다 리쿠의 소설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그녀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고등학생이라는 점이다. 그녀의 데뷔작인 <여섯번째 사요코>(노블마인. 2006)부터 시작하여 <밤의 피크닉>(북폴리오. 2005), <굽이치는 강가에서>(노블마인. 2006), <네버랜드>(국일미디어. 2006)까지 주인공들은 모두 고등학생이다.

그들은 항상 어린시절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서로에게 털어놓고 보면 쉽게 해결책이 보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혼자서 감추고 낑낑대다 보면 정말 커 보이게 마련인 그런 트라우마들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절대 ‘유령’ 같은 것은 나오지 않지만 금방이라도 유령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누군가 있는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면 읽고 있는 독자도 따라서 뒤를 돌아보게 되고, 주인공의 호흡이 빨라지면 책을 읽는 속도도 빨라진다. 고등학생인 주인공들이 머무는 장소가 학교 기숙사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학교라는 곳은 알 수 없는 미스테리들이 가득한 곳이니까. 게다가 각자의 트라우마가 학교라는 미스테리한 곳과 잘 매치된다면 공포 분위기는 쉽게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획일화된 입시 교육을 지적하고 있다. <밤의 피크닉>, <굽이치는 강가에서>, <여섯번째 사요코>에서는 주인공들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고등학생으로서의 추억을 한 가지씩 간직할 수 있기를 원한다. <네버랜드>에서는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영어 교육을 비판하고 있다.

“봐라, 여기 나온 이 녀석들 T공대라고. 머리 좋은 녀석들이라고. 일본 학생 중에 상위 몇 퍼센트에 들어가는 이 녀석들이 6년씩이나 영어 수업을 받고도, 저거 봐, 다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듣지도 못하잖아. 영어는 단위수도 많고, 일 년 내내 어마어마한 시간을 쏟아 붓는데도 전혀 도움이 안 되잖냐. 6년 동안 받은 수업이 완전히 시간 낭비였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야.”

“6년씩이나 해도 습득이 안 된다는 걸 알면 그 시간을 다른 데 쓰는 게 훨씬 유익하지 않겠어? 일본말도 영 일본말 안 같은 구문 해석 같은 걸 대체 대학 입시 말고 어디다 써 먹을 수 있겠냐? 정말 말할 수 있게 할 생각이 있으면,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꿔야지. 효과가 없다는 걸 알면서 똑같은 교육을 끝도 없이 계속하는 건 바보 멍청이 짓이야.”

“일본의 영어 교육은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가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영어 교육이지.” (p. 103)

피터팬의 네버랜드는 어른이 된 나에게도 네버랜드이다. 일상의 피곤함 때문에 지치고 우울할 때면 나는 피터팬의 네버랜드로 떠나곤 한다. 다 큰 어른이 무슨 동화책을 읽냐며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일상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그지없이 행복한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행복한 네버랜드가 존재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래본다.

[이명희 시민기자 heeya1980s@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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