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 꼭닮은 의학 만화
‘하얀거탑’ 꼭닮은 의학 만화
  • 북데일리
  • 승인 2007.02.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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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최근 드라마 <하얀 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의 인기로 메디컬(의학) 드라마라는 장르가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종합병원>이나 <해바라기> <메디컬 센터> <의가형제>와 같은 메디컬 드라마들이 만들어진 적이 있지만, 병원과 의사를 단지 소재로만 다루는 느낌을 주었었죠. 병과 의사와 환자를 보여줘야 하는 메디컬 드라마에서 나오는 거라고는 의사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가 위주였으니 말입니다.

그에 반해 <하얀 거탑>은 병원 내부의 정치관계에 대해서, <외과의사 봉달희>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좀 더 깊이있게 파고들어가는 본격적인 메디컬 드라마입니다.

국내에서는 낯선 장르지만, 일본만화에서는 의사가 주인공이 되는 의학만화는 엄연한 하나의 장르입니다. 일본 만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테츠카 오사무가 <블랙 잭>을 통해 의학만화를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켰습니다. <블랙 잭>의 영향은 실로 막대해서 현재까지도 일본 의학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저 블랙 잭의 환영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주 칼럼에서 별도로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노기자카 타로의 <의룡>(대원씨아이. 연재중)은 <하얀 거탑>과 짝을 지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병원 내부의 병폐를 고발하고, 병원 내 권력관계의 상층부에 편입하여 병원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모조리 개혁하고자 하는 야심찬 흉부심장외과의 조교수 카토가 등장합니다. 카토는 NGO에서 신기에 가까운 수술 실력을 보여준 외과의 아사다 류타로를 메이신 대학병원의 흉부심장외과로 데려오면서 개혁을 진행해나갑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굳게 닫혀있던 병원 내부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개혁은 난관에 부딪혀나갑니다.

이러한 <의룡>의 내용은 <하얀 거탑>의 내용과도 연결이 됩니다. 어느 사회에서든 구성원 간에 권력을 놓고 다툼이 벌어지게 마련이듯이, 환자를 치료하고 병을 연구하는 것이 소임이라고 생각되는 병원의 의사들조차도 그러한 권력다툼에서 결코 예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룡>은 일본 의료의 병폐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하나하나 짚어나갑니다. 심지어 작품내부에서 언급된 것을 독자가 혹시라도 잊어먹을까봐 소챕터의 마지막에 강조해주기도 합니다.

<의룡>에서 언급되는 병원 내부의 병폐는 충격적입니다. 돈이 안 되는 환자는 죽든 말든 내쫓고, 죽어가는 환자는 시체처리만 전문적으로 하는 3류 병원으로 옮기며, 의사들은 환자의 치료보다는 어떻게 줄을 서야만 출셋길이 보장되는지를 따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의료사고는 병원의 체면을 생각해서 쉬쉬하고, 연구의 성공을 위해서 건강상태가 좋은 환자에게만 수술을 합니다. 의국 교수를 따라서 의사들이 회진을 도는 `다이묘 행렬`의 모습은 병원 내부의 정치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이 `다이묘 행렬`의 모습은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도 보인 적이 있습니다.

<의룡>의 갈등은 반대성향의 두 주인공 아사다와 카토의 대립에서 시작됩니다. 두 사람은 모두 병원이 개혁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에 동조하지만, 카토는 내부의 높은 자리에 자신이 직접 들어가 시스템 전체를 바꾸려고 하고, 이미 병원의 시스템 자체에 환멸을 느끼고 시스템을 거부한 아사다는 어떠한 경우에도 환자와 환자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의학만화에서 이처럼 병원 내부의 권력투쟁관계를 다뤄내고 있습니다. 사토 슈호의 <헬로우 블랙잭>은 인턴인 사이토 에이지로가 대학병원의 각 의국에 실습을 다니면서 병원의 병폐를 하나하나 짚어나가고, 야마다 타카토시의 <닥터 코토 진료소>의 주인공 코토는 대학병원의 안정된 자리를 저버리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의 보건소로 갑니다. 그렇기에 일본의 의학만화를 두루 섭렵한 독자라면 <하얀 거탑>이 이야기하는 병원 내부의 권력투쟁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겁니다.

참고로 12권이 연재중인 <의룡>에서 흉부심장외과의 차기 교수직을 노리는 카토는 큰 난관을 맞게 됩니다. 현교수인 야구치 타케오가 카토를 제거하기 위해 그녀의 라이벌을 차기 교수로 추천하였고, 아사다의 재능을 높이 산 ER(응급실)의 키토 교수는 아사다를 ER로 데려오기 위하여 카토의 실각을 노립니다.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지`

카토의 혼잣말은 병원 내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쥐고 있기에 의사는 그들만의 성역(聖域)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잦은 의료파업이나 진료거부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러한 현실입니다. <의룡>은 의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병원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애석하지만 적성과 상관없이 오직 명예와 출세가 보장된다는 이유로 의대에 진학해서 의사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의사들이 <의룡>을 읽는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할런지 몹시 궁금해지는군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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