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23년, 출판계 누빈 `박사 세일즈맨`
열정의 23년, 출판계 누빈 `박사 세일즈맨`
  • 북데일리
  • 승인 2007.02.1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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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뛰는 출판인②] 출판사 ‘이른아침’ 최복현 전무

※국내 유일의 책 전문 뉴스사이트 북데일리는 ‘베스트셀러 기획자’ 연재 인터뷰에 이어 출판영업인 연재 인터뷰 ‘발로 뛰는 출판인’을 시작 합니다. 현장 영업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출판시장의 흐름과 한 권의 책이 태어나기까지의 흥미진진한 과정을 듣는 자리를 마련 합니다. - 편집자 주

[북데일리] 언덕위의 하얀 예배당을 지키는 목사가 되고 싶었다. 시골 학교 교장, 교수도 되고 싶었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난 때문이었다. 학교 대신 공장을 가야 했고, 공부대신 돈을 벌어야 했다. 배움에 대한 목마름은 책을 찾게 했다. 헌책방을 누비며 ‘최대한’ 두껍고 글씨가 많이 있는 책을 수집했다. 본전생각 안하려면 그래야 했다. 잔업을 마친 피곤한 날에도 공부와 책읽기만은 거르지 않았다. 가난과 무지를 벗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콤플렉스는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마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출판사 배본사원이었다. 책을 끼고 다니면 왠지 멋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책 냄새를 실컷 맡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다. 출판사 ‘이른아침’의 최복현 전무가 출판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계기다. 청년사, 박우사, 생각의 나무, 씨앗을뿌리는사람들, 더난 출판사를 거쳐 이른 아침에 이르기까지 23년째 출판영업인의 길을 오롯이 걸어왔다. 최 전무에게 출판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가난과 학력 콤플렉스를 벗게 해준 감사한 일터이기 때문이다. 출판 일을 시작하면서 최 전무는 대학과정은 물론 불어교육학 석사, 불문학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1990년에는 ‘동양문학’ 신인상을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초등학교 졸업의 가난한 공장근로자에서 불문학 박사, 작가가 되기까지. 공부와 책읽기는 한 시도 놓아 본 적이 없다는 그다.

‘공부하는 영업자’로 유명한 최 전무의 열정은 영업자, 서점직원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한 서점직원은 한국출판영업인협의회 게시판에 그를 칭찬하는 이런 글을 올리기도 했다.

“빼빼마른 분이 어쩌면 그리도 열심이신지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모든 일에 임하며, 귀감이 되는 분입니다”

늘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최 전무는 후배들을 만날 때면 “지금 자리에 만족하지 말고 자기계발을 하라”는 조언을 잊지 않는다. 자기 실력이 없으면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비굴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나라’고 하면 떠나야 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춰야죠. 그렇기 때문에 공부와 자기계발이 더욱 중요합니다”

마른 몸에서 솟구치는 열정이 그를 빛나게 했다. “공부를 해도 남한테 도움은 받지 말자. 월급만은 집에 갖다 주어야 한다”는 좌우명을 갖고 살아 왔다는 최 전무.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가 석사, 박사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던 것 역시 번역, 집필, 강연을 병행 하는 고된 생활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학비마련 때문에 새벽에는 외국어 학원 강사를 했어요. 낮에는 일을 하고 사장님이 배려를 해주셔서 일주일에 두 번은 대학원에 갈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후배들을 가르쳤어요. 체력의 한계를 느낀 적도 있었지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행복했습니다”

최 전무의 이런 집념은 집필로 이어졌다. 시집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새롭게 하소서>, 에세이집 <어린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소설 <어느 샐러리맨의 죽음> 번역서 <에로틱 문학의 역사> <어린 왕자> <별> <틱낫한, 마음의 행복> <낙천주의자 캉디드> 모두 최 전무의 손을 거쳐 간 책들이다.

특히 ‘생텍쥐페리’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작가이다. 불문학을 전공하면서 ‘참여문학’ ‘행동주의 문학’을 실천한 생텍쥐페리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최 전무. 그는 “자신의 일 속에서 글거리를 찾았던 생텍쥐페리는 가장 닮고 싶은 작가”라며 “죽음을 수 없이 넘나들었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평가했다. ‘어린왕자’라는 지금의 별명 또한 생텍쥐페리를 향한 최 전무의 애정에서 비롯됐다.

그는 출판영업인이 갖춰야 할 자질로 성실함과 정직함을 꼽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변함없는 성실한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진실한 마음이 가장 필요 하다는 것.

“출판영업은 사람을 대하는 일입니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맞추지 못한다면 마케터로서 힘들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상대가 어느 자리에 있든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 태도예요. 그럴 때 관계가 돈독해지고 신뢰를 이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직업에 만족한다는 그는 “일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했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고 전했다. 상대성을 인정하는 법을 배운 것 역시 일로 얻은 깨달음이다.

최 전무가 겪어 온 출판시장은 많은 변화를 거듭했다. 인문, 사회과학 책이 팔리던 때가 있었고, 시와 문학이 시대를 점령하던 때도 있었다.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 ‘경제’라는 방향전환을 기도하고 있는 출판. 이러한 현상을 최 전무는 그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문학과 인문이 살아나야 세상이 인성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계발, 처세 책이 늘수록 사람들은 여유가 없어 질 겁니다. 인문, 문학 책이 많이 나오고 읽혀야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요. 특히 인문은 창의성의 출발점입니다. 책읽기를 멀리하는 영상매체 세대에게 인문과 문학만이 사고의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습니다”

최 전무는 “책을 멀리하는 풍토가 걱정 된다”며 “인터넷 서점, 대형서점의 확장으로 인해 동네서점이 줄어 든 것 역시 안타깝다”고 밝혔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면 책 읽는 사람들이 줄고 핸드폰이나 PDP로 동영상이나 게임을 보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 역시 그렇다. 그는 작은 액정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전자책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휴대하기 편한 이동매체를 찾는 이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종이책의 미래 역시 신중히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도서정가제 또한 출판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출판현장을 누벼 온지 벌써 23년 째. 위대한 위치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는 최 전무. 그는 “주어진 여건에서 공부와 일을 즐긴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며 “젊어서는 열정으로 살고 나이들 어서는 습관으로 산다”고 말했다. 매일 1시간의 새벽집필, 주1회 등산, 교회, 조기축구. 이 네 가지는 변함없이 지켜온 생활습관이다.

최 전무는 앞으로 6년 정도 현장을 더 뛴 후에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자연이 벗하는 삶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는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었기에 행복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열정만큼은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산다는 것 자체는 열정이지만 기본 바탕은 사랑입니다. 일에 대한, 공부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 사랑만큼은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결국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니 남은 삶도 뜨겁게 사랑하며 살려고 합니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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