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유혹 "오늘밤 환상을 맛 볼래요?"
책의 유혹 "오늘밤 환상을 맛 볼래요?"
  • 북데일리
  • 승인 2007.02.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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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바텐더라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바(=막대기), 텐더(=부드럽다, 상냥하다). `상냥한 막대기` 라는 뜻입니다. 이 나무가 바, 그것만으로는 그저 술을 놓는 널빤지일 뿐이죠. 하지만 그 곳에 바텐더가 있기에, 바에 텐더(상냥함)가 생겨납니다.

칵테일과 바텐더를 소재로 한 아라키 조의 작품 <바텐더>에는 위와 같이 바텐더라는 직업을 설명합니다. 또한 `방황하다 막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일에 지쳤을 때, 저 문을 열면 기운을 북돋아준다. 그러기 위해 바(Bar)는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라는 말로 바(Bar)의 존재이유를 설명합니다. 칵테일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 바(Bar)라는 곳은 단순히 칵테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 그 곳에서 마시는 한 잔의 칵테일이야말로 인생을 새롭게 일깨우는 한 잔의 감로수이고, 바(Bar)라는 공간은 인생의 축약판과도 같은 곳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케다 후미하루의 <바 라임라이트>(학산문화사. 2004)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라임라이트라는 바와 그 바의 여주인이자 바텐더인 사라가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칵테일은 상당히 특이합니다. 라임라이트의 특제 칵테일은 손님이 원하는 소원을 하룻밤동안 이루어줍니다. 그 소원이 어떠한 것이든 말입니다. <바 라임라이트>는 이처럼 칵테일을 이용해 현실과 환상의 공간을 절묘하게 넘나듭니다.

바텐더인 사라가 권하는 칵테일은 마법처럼 손님의 소원을 이루어주지만, 그 소원의 결과가 모두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칵테일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이끌어냅니다.

`난 슬픈 사람이나 고민이 있는 사람을 구해주겠다는 말 같은 거,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사람이 무엇을 기준으로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지 그건 자신이 결정하는 것. 내 칵테일을 마시고 이루지 못할 꿈을 이룬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그 사람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니 내가 뭐라고 참견할 일이 아니죠.`

라임라이트의 특제 칵테일을 마시고 소원을 이루었으나, 오히려 죽음을 맞이한 친구를 보고 견습바텐더인 사카키는 사라에게 항의하지만 사라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어쩌면 사라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대신 영혼을 가져가는 타나토스의 화신일 지도 모릅니다.

<바 라임라이트>의 시공간은 너무나 환상적입니다. 그 곳은 세상의 모든 시간이 교차하는 접점이며, 영원한 생명을 사는 바텐더 사라는 그 시공간을 칵테일로 지배합니다. 칵테일로 시간과 공간을 다스리는 바텐더 사라는 정말 치명적 유혹으로 넘치는 캐릭터입니다. 그녀가 어떻게 이러한 힘을 얻게 되었는지는 작품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소개가 됩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차라리 그녀를 영원한 판타지의 세계에 가두어두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최근에는 술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화제를 끌고 있습니다. 와인을 소재로 한 아기 타다시의 <신의 물방울>이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간 주목받지 못하던 술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대거 국내에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글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아라키 조의 <바텐더>를 비롯해, 와인을 소재로 한 <소믈리에>도 뒤늦게 출간되었습니다. 그러나 위의 작품들의 장르는 음식만화입니다. 어디까지나 술을 소재로 해서 최고의 맛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들을 다룹니다. <바 라임라이트>는 칵테일이라는 `음식`을 소재로 하지만 이 만화에서 음식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텐더 사라가 칵테일의 탄생비화와 레시피를 공개하는 순간뿐입니다.

만약 당신이 번화한 시내의 뒷골목을 누비다가 고전적인 벽돌건물에 있는 `라임라이트` 라는 바를 발견한다면 당신 인생에 변화의 기회가 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하나의 초콜릿 상자와 같습니다. 어떤 초콜릿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맛이 틀려지듯이 우리의 인생도 어떤 결과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중) 당신이 오늘 밤 사라가 추천하는 라임라이트의 특제 칵테일을 마신다면 하룻밤의 달콤한 환상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좋은 쪽으로 끝나리라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인생은 그런 거니까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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