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교과서에 미친 가장에 아내와 딸 `눈물 박수`
②교과서에 미친 가장에 아내와 딸 `눈물 박수`
  • 북데일리
  • 승인 2007.02.1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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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광의방⑨]대구 사는 양호열 씨

[북데일리] 본격적으로 수집에 나서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돈 한 푼 되지 않는 헌 교과서 수집이라니. 게다가 그는 딸린 처자식까지 있는 가장이었다. 지금이야 대학 박물관 자문을 해주고 전시회를 통해 이름도 알렸지만 20년 가까이 아무 수입 없이 전국을 헤매는 남편을 아내는 곱게 보지 않았다.

아이는 커감에도 남편의 수집벽이 멈춰지지 않자, 한번은 아내가 친정에 가버렸다. 남편은 “다른 일을 해 보겠다”는 약속을 하고 데리고 왔다. 일상적인 삶을 살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00에 교과서가 있다더라`는 소문만 들으면 안달이 났다.

단순한 재미가 아닌 ‘교육사 복원’이라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기에 포기할 수도, 그만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아내는 침묵으로 동의를 선언했고 부업으로 생계를 책임졌다.

고생만 시킨 가족들에게 남편으로, 아빠로 제 모습을 찾은 건 1995년 첫 전시회를 열면서였다. ‘교과서 전시회’라는 신기한 제목에 관람객이 모여들었고 언론역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교과서가 파지에서 자료로 살아나는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전시장을 찾은 아내와 딸은 눈물어린 박수로 그를 격려했다.

수집광 양씨에겐 “영화로 찍어도 부족”할 만큼 갖가지 일화가 있다. 예컨대 수천만 원을 호가 할 귀한 자료를 시골 화장실에서 발견 한 것도 그중 하나. 물론 생계 때문에 이미 수중에 없다. 얼마라도 생기면 사모아야 하는 ‘가난한 숙명’ 탓에 남은 건 교과서뿐. 하지만 후회는 없다.

웃지 못 할 일도 많다. 딸이 귀한 집안이라 양씨의 딸이 태어나자 집안은 축제분위기가 됐다. 모두들 귀한 아이가 났으니 삼칠일(21)안에 돌아다니면 부정을 탄다며 조심하라고 일렀다. 양씨 역시 아내의 산후조리를 도맡으며 집안일에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그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경북 00 지역에 교과서가 한 박스 있다는 연락이었다. 누워 있는 아내를 보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틀을 고민한 끝에 집을 빠져나왔다. 모두가 잠든 시간. 새벽 4시였다. 간단히 요기라도 때울 심산으로 휴게소 앞에 잠시 멈췄다.

마침 난로 위의 두유가 눈에 띄었다. 따뜻한 병의 온기가 추위를 녹여 주는 듯 했다. 서둘러 뚜껑을 여는 순간, 사고가 났다. 두유 병이 폭발하며 뜨거운 액체가 양 씨의 왼쪽 눈을 뒤덮었다. 응급조치는 했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갔다. 교과서가 있는 곳이라면 어떻게든 가야 했다. 양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교과서라면 그냥 미치는 거죠”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③편에 계속됩니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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