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버려지는 게 안타까워...`20년 교과서 수집광`
①버려지는 게 안타까워...`20년 교과서 수집광`
  • 북데일리
  • 승인 2007.02.12 1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수집하지 않으면 불쏘시개로 들어가고 말아요. 한국의 교육역사를 위해서라도 시골에 묻혀 있는 교과서를 끄집어내야 합니다”

[독서광의방⑨]대구 사는 양호열 씨

[북데일리] 화장실 휴지, 아궁이 불쏘시개, 이삿짐 쓰레기로 버려지는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발로 뛰는 남자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교육역사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양호열(51)씨. “교과서만 보면 정신을 잃는다”는 교과서 수집광이다. 대구시 황금동에 위치한 작업실과 중동에 있는 창고에 소장중인 분량은 자그만치 1만여 권.

양씨가 공개한 창고에는 조선시대 산법서 수진본, 개화기의 유년필독 초등대한역사, 일제강점기 조선어독본, 미군정청시기 한글첫걸음, 한국전쟁기의 군용셈본 등 귀한 자료가 즐비했다. 문구류, 교복, 상장 등 교육 자료 또한 수백 점에 달했다. 낡은 교과서, 난로 위의 도시락, 나무 책상과 의자, 빙수기... 정교한 소품들이 하나의 교실을 재현하고 있다.

수집기간은 무려 20년. 모두 말 못할 고생 끝에 모은 피와 땀의 결정체이다. 민간인통제구역, 수몰댐 지역, 시골 폐가 등 교과서가 있는 곳이라면 땅 끝까지라도 달려가 수집했단다. 돈 한 푼 되지 않는 교과서수집에 이처럼 매달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양씨는 “선교 100년, 농업 100년 다 있는 데 교육 100년을 엮는 사람은 왜 아무도 없느냐”며 “교과서야 말로 교육사의 가장 중요한 산물인데 아무도 정리하지 않으니 귀한 자료들이 버려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지금 수집하지 않으면 교육의 역사가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그의 경고는 단호했다.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교육자료 이기에 한 권이라도 더 수집해 교육사의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수집 지론이다.

시대별, 연도별로 놓여 있는 교과서를 보니 한국의 교육 역사가 한 눈에 들어오는 듯 했다. 양씨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전쟁 중에 만들어진 교과서는 물자절약의 의미를 담아 매우 소형화 시켰다. 당시에도 사설출판사에서 발행한 것은 표지가 컬러 인 것도 더러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시대상을 더욱 뚜렷이 알 수 있다. 셈을 가르치는 대목에서도 “전투기 한 대가 날고 있는데 다른 한 대가 더 날면 모두 몇 대일까?”라는 질문이 종종 등장한다.

수집은 20년 전부터 시작됐다. 당시 양씨는 잘나가던 대기업 샐러리맨이었다. ‘최우수사원’ 표창까지 받으며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 골목어귀를 지나던 고물상 리어카 한대를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다. 그 안에는 파지로 버려지는 교과서들이 놓여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사용 된 ‘조선어독본’이었다.

국정교과서를 취급하는 서점을 운영하던 부친의 영향으로 교과서에 관심이 많았던 지라 버려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교과서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밤새 책을 뒤적거리고 뜬 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렇게 버려져서는 안 된다. 교육사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교과서 수집은 누군가 해야 한다.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겠다”는 각오가 용솟음쳤다.

②편에 계속됩니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