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독자가 소설 안읽는 것은 작가 책임"
최인호 "독자가 소설 안읽는 것은 작가 책임"
  • 북데일리
  • 승인 2007.02.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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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유림> 완간한 작가 최인호

“소설 읽는 독자들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일차적 원인은 작가한테 있어요. 작가들이 깨어 있어야 해요”

[북데일리] 3년간의 대장정 끝에 <유림>(열림원. 2007)을 마치고 돌아 온 작가 최인호(62). 그가 `어렵게 쓰는` 작가들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최근 시내 한 서점에서 만난 그는 “작가가 먼저 쉽게 이해해야 쉽게 쓸 수 있다”며 눈높이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70~80년대 ‘겨울 나그네’ ‘고래사냥’ ‘안녕하세요 하느님’ ‘깊고 푸른 밤’ 등의 히트작부터 역사소설 <잃어버린 왕국> <상도> <해신> <유림>까지 늘 독자와 함께 호흡한 그이기에 납득할 만한 의견이다.

공자, 노자, 조광조, 이퇴계... 대사상가들을 담은 <유림> 역시 작중 화자인 ‘나’를 등장시켜 자칫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유교를 쉽게 설명하려 애썼다. 이러한 시도는 <잃어버린 왕국> <해신> <상도> 때부터 계속 됐다. 한 평론가는 이를 일컬어 ‘최인호만의 특이한 작법’이라고 평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야 하는데 내레이터가 필요 했어요. 그래서 ‘나’라는 인물을 끌어 들인거죠. 안 그랬으면 읽기 힘들었을 거예요”

최인호는 독자를 일컬어 자신의 ‘모체’ ‘땅’ ‘생명의 근원’이라고 밝혔다. 매일 원고지 30매를 채워야 했던 지난한 고통, 그 속에서 매번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동력은 바로 독자였다는 것.

“희랍신화에 나오는 ‘안타이오스’는 땅의 아들로 땅에 몸이 붙어 있는 한 당할 자가 없는 초안이었습니다. 땅에 쓰러지면 더욱 힘을 얻기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그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하는데 내게 있어 독자는 땅입니다. 쓰러져도 넘어져도 내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독자의 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의 대지는 나의 어머니입니다”

40년 작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공력을 쏟아 부은 <유림>. 그 끝에 최인호는 이 같은 고백을 실었다. “독자는 땅이요 나는 땅의 아들”이라는 말은 허투루 한 말이 아니었다. 이어 “나는 평론가는 안 무서워하는 사람이에요. 내가 무서워하는 건 평론가가 아니라 독자”라는 육중한 목소리를 떨어뜨렸다.

최인호는 <유림>을 쓰면서도 “웬 케케묵은 공자 이야기냐”며 외면 받을까 걱정했다고 전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소설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 작가 스스로에게 아무리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독자들이 읽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어려운’ 문단을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이유 역시 발길을 돌린 문학 독자들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풀이된다.

최인호는 “이퇴계의 ‘이기이원론’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면서 “어떻게 하면 그것을 쉽게 전달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처럼 공부를 많이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1천여 권이 넘는 관련 서적을 독파하고 공부 한 것 역시 자신부터 쉽게 이해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음을 증명했다. <유림>은 최인호의 몸을 통해 몇 번이고 채쳐 걸러진 ‘먹기 좋은’ 반찬이다.

<유림>와 <제 4제국>을 동시에 썼던 지난 3년간, 최인호의 머릿속에는 늘 ‘유교’와 ‘가야’가 공존했다. 좋아하던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집필실에 틀어 박혀 소설만 생각했다. 연재를 위해 매일 갈아치워야 했던 원고량이 때론 그를 짓눌렀다. 그래도 도망가지 않았다. 꾀부리지 않고 맞서 써냈다.

집필의 수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장쾌한 답을 던졌다.

“왜 힘들지 않았겠어요. 아무것도 없는 빈 공터에 이야기를 만드는 일인데요. 그래도 고통 속에 행복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나는 엄청나게 쓸 것 같아요. 열정이 굉장하거든. 이제야, 글을 즐긴다는 의미를 알겠어요”

활어의 아가리마냥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글구멍. 그 안에서 최인호는 뜨거운 연애소설을 꿈꾸고 있다. 다시, 원고지 앞에 앉은 그의 심장이 젊은 시절 못지않게 뜀박질 하고 있다.

“생명이 있는 한 누구나 춤 춰야 해요. 살며 사랑하며 자기 생명을 춤춰야지요. 실연당하면 당한대로 울며 춤추고, 사랑하면 사랑하는 데로 기뻐서 춤추고. 산다는 게 어떻게 즐거운 일만 있나. 당연히 고통도 있고 절망도 있지. 그래도 희열이 있잖아요. 생명이 있는 한 나는 글로 춤 출겁니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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