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뇌 속에 유령이 살고 있다?
당신의 뇌 속에 유령이 살고 있다?
  • 북데일리
  • 승인 2007.02.05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데일리] ‘뉴스위크’가 선정한 21세기 뛰어난 인물 100인 중에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인 라마찬드란 박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요즘 과학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야를 꼽으라면 대부분은 이론 물리학에서의 초끈 이론과 신경과학 및 심리학에서 다루는 뇌에 대한 연구라고 이야기한다. 이론 물리학은 뉴턴과 아인슈타인 이라는 당대 최고의 천재들의 등장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지만,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신경과학은 30년간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이론을 만들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수많은 천재들의 그 오랜 세월에도 뇌의 실체에 대한 성과가 미미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뇌가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기 때문이다.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믿는 종교인이나 범신론자가 아니라면 오늘날에 와서 인간의 마음, 의식이 뇌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일생을 통해 한결같은 통일성을 갖는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나’를 ‘남’과 구분 짓는 기억, 의식, 감정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고 있을까? 철저히 주관적인 ‘나’의 감각질을 객관적인 관점으로 정의내리는 것이 가능할까?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바다출판사. 2007)의 공저자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샌드라 블레이크스리는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과거의 환원주의적 연구 에서 벗어나 뇌에 이상이 생긴 환자들을 직접 관찰해 보자고 제안한다.

"몇 년 전 당신은 나한테 망막장애를 신의 은총으로 혼동한 중세 수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내가 보는 신성한 기호들의 단 10분의 1만 보았을 뿐입니다. 내가 본 것에는 파란색 후버 청소기, 금색 불꽃, 녹아내리는 보라색 방울, 뒤엉킨 분비물, 춤추는 갈색 점, 눈송이, 사프란, 밝은 파란 물결, 8이 쓰인 두 개의 공이 있습니다... 각각의 꽃잎은 열 배는 더 호리호리하고, 프리즘의 색깔을 순서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 숭고한 빛의 배열 혹은 신의 은총에 버금가는 그 어떤 빛의 장관도 인간은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어렸을 때 사고로 시력이 상실된 후 이상한 환각에 시달리는 환자의 묘사이다. 이런 질병을 ‘찰스 보넷 증후군’ 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상식에 거슬리는 이들의 증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저자에 의하면 시각시스템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2가지 경로로 움직인다고 한다. 진화적으로 봐서 최근에 생긴 1차 신경피질은 두뇌의 고위중추에 해당하는 측두엽에 도달하고 시각 정보를 받은 측두엽은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장기적으로 기억을 저장하게 도와주는 해마를 통해 바라보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연인에게는 사랑의 감정을, 낯선 사람에게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신체를 긴장상태로 조정하게 되는 것.

또 하나는 진화적으로 역사가 오래된 경로로써 망막에서 받은 정보를 시공간의 인식 및 신체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고위중추인 두정엽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곳은 측두엽과는 달리 의식이 개입되지 않는다. 저자는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이상한 환각이 보이는 것은 진화상으로 원시적인 두정엽의 일부 지역에서의 잘못된 정보 때문이라고 하면서 ‘좀비’ 라는 단어를 통해 의식 없는 유령이 존재 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환상사지’(신체의 일부가 사고로 절단된 이후에도 뇌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신체상의 일부로 간주하는 현상) ‘환지통’(뇌의 잘못된 인식으로 잘려나간 부위에서 알수 없는 통증이 생기는 현상), ‘거울인식불능증’(뇌의 우반구 손상으로 좌측에 있는 대상을 인식할 수 없게 되는데, 일반인과 달리 거울에서의 좌우 대칭을 이해하지 못함), 카프그라 망상(측두엽에 위치하고 있는 편도의 손상으로 감정을 느낄 수 없어서 가까운 친지를 알아보지 못하는 증상), ‘코타르 증후군’(카프그라 망상의 과장된 형태로, 변연계의 손상으로 세계와의 모든 감정적 접촉이 상실됨), ‘환상임신’과 같이 이 책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용어들은 우리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견고하게 여겨온 신체상이라는 것이 두뇌의 사소한 손상으로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더 나아가 신체는 두뇌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환상일수도 있으며,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후대의 자손을 만들어 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환상사지’는 태생과 양육 이라는 오래된 논쟁에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한다. 사고로 한쪽 팔이 절단된 환자는 그것이 없음에도 여전히 몸에 팔이 붙어 있다는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더 나아가 정상인 손가락으로 얼굴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환상사지’에 참을 수 없는 통증까지 겪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로 환자의 한쪽 팔을 절단하는 순간 대뇌의 신경회로는 기존의 신체상을 수정하는 재매핑이 일어난다고 한다. 즉, 대뇌의 신경회로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극적인 수정작업이 일어나면서, 전혀 다른 능력을 갖게 될 수 있다고 추측한다. 이러한 예로 ‘서번트 신드롬’을 들고 있다. 이들은 일반적인 지능은 백치에 가깝지만 계산 분야에 있어서는 천재적 능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5자리수의 곱셈이나 소수의 개수, 멀리 떨어져 있는 물건의 길이를 일반인은 상상도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측정해 낸다. 저자는 ‘서번트 신드롬’이 수학 모듈이라고 할 수 있는 좌측 모이랑이 출생 직후의 두뇌손상으로 재매핑 되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졌을 거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이것은 아직까지는 사변에 불과하지만, 보다 정밀한 실험으로 사실로 밝혀진다면 유전자에 의해 고정배선된 뇌의 신경회로가 환경으로 인해서 바뀔 수 있으며, 태생과 양육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될 가능성이 높다.

뇌는 아직까지는 밝혀진 부분보다 베일에 싸인 부분이 더 많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대뇌 속의 유령들’ 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종교적 체험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보편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측두엽 간질이 일어난 환자들 중에는 신을 만났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제 나는 최종적으로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내가 평생을 기다려온 순간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우주의 진정한 본성을 통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변화를 겪은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우주적 의미를 부여하고 글쓰기 중독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로, 저자는 측두엽에 위치한 변연계(사건에서 끌어낸 정보, 즉 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사건에 대한 감정적 연상을 다루는 중앙 핵심 처리장치) 내부에서의 갑작스러운 발작이 신경회로의 통신을 증가시켜서 감정의 고양을 일으켰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측두엽은 일종의 신(God)모듈로 볼 수 있으며, 종교적 믿음은 초기 인류가 외부 위험에 맞서 공동체의 결집을 위해 필요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정서적 측면을 담당하는 측두엽에 고정배선 된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을 전개하고 있다. 종교적 믿음이 생겨낸 이유에 대한 가설은 현재로써는 사변에 가깝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신경과학의 여러 실험결과들은 측두엽과 종교적 믿음 사이에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감각질(기쁨, 고통, 슬픔과 같은 가공되지 않은 원래의 감정)의 실체는 근대과학이 탄생한 이후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을 괴롭혀 왔다. 미래에 두뇌의 모든 메커니즘을 이해한 과학자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과학자가 색맹이여서 파란색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고 할 때, 정상적인 눈을 갖고 있는 사람이 파란색이 어떤 것인지를 언어를 통해 색맹의 과학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게 가능할까? 이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언어라는 중간 매개체 때문이다.

영어로 된 문서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나타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왜곡 과 같은 의미이다. 저자는 이런 난제의 해결을 위해 자연어를 포기하고 정상적인 눈을 갖고 있는 사람의 색 처리 영역과 색맹인 과학자의 색 처리 영역을 신경회로로 연결해서 주관적 경험을 직접적으로 전달하자는 과감한 가설을 제시한다. 만일 감각질에 대한 가설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우리는 21세기 전반부에 자아정체성과 의식에 대한 난해한 수수께끼를 풀 중요한 단서를 얻게 된다. 이 책이 1998년에 처음으로 출간됐을 때 커다란 호평을 받은바 있다.

그때부터 9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뇌에 대한 상당 부분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라마찬드란 박사의 자아의 정체성을 비롯한 두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대뇌 손상 환자들 에게 행한 갖가지 임상실험들은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