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투수놀음? 포수가 더 아름답다
야구는 투수놀음? 포수가 더 아름답다
  • 북데일리
  • 승인 2007.01.2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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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스포츠 만화의 대부분은 상당히 정형화된 플롯을 따라갑니다. 주인공이 어엿한 선수로 성장할 때까지 성장하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약팀인 주인공의 팀이 기적적인 승리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나 우라사와 나오키의 <해피>,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처럼 작품성에서 대작 스포츠소재 만화라는 작품들은 대개 저 구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우라사와 나오키의 <야와라>나 카이타니 시노부의 <원 아웃>처럼 이미 완성된 기량을 지닌 주인공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정상급의 기량같아 보이지만 주인공들은 갖은 역경을 맞으면서 자신의 기량을 더욱 업그레이드 시키니 공식을 크게 배반하지는 않는다고 보아야겠죠.

히구치 아사가 만든 <크게 휘두르며>(학산문화사, 연재중)는 저러한 공식에 충실하긴 합니다. 그런데 작품을 만든 히구치 아사의 이력이 매우 독특하다는 것에 일단 눈길이 갑니다. 히구치 아사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크게 휘두르며>의 두 주인공인 투수 미하시와 포수 아베는 기존 야구만화에서 보지 못한 매우 독특한 배터리 관계를 형성합니다. 중학시절 낙하산 에이스라는 평가 때문에 소심해진 투수 미하시와 투수를 자신의 지배하에 넣고 그라운드를 지배하려는 폭군 스타일의 포수 아베는 투수가 항상 중심이던 기존 야구 만화의 통념을 뒤엎습니다. 심지어 미하시는 소심하다 못해 모든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구석에 숨어서 자학하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합니다.

야구만화는 언제나 투수가 최우선이었습니다. 하라 히데노리의 <그래, 하자!!>나 카미오 류의 <라스트 이닝>처럼 선수가 아닌 감독이 주인공이 된 작품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라운드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홀로 마운드에 서서 타자에게 공을 던지는 투수였습니다. 카와구치 카이지가 <배터리>라는 작품으로 포수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만든 적은 있지만, 포수보다는 프로에서 무실점 행진을 벌이는 고등학교 동기인 투수가 사실상의 주인공이던 작품이었죠.

<크게 휘두르며>는 기존 야구 만화에서는 투수의 공을 받는 역할로 주로 등장하던 포수가 투수를 리드해서 경기를 승리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과정에서 소심하던 미하시의 성격과 위압적이던 아베의 성격은 서로 중화됩니다. 야구 외에도 이런 인간관계를, 특히 성격을 고치는 부분을 중요시한 것은 작가인 히구치 아사가 심리학을 전공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H2`에서 센카와 고등학교의 포수 노다는 매니저인 하루카에게 “나의 투수리드가 없다면 히로는 히데오에게 이길 수 없다”라고 말 합니다. <터치>에서 투수인 타츠야에게만 애정을 쏟아주던 아다치 미츠루는 `H2`에서 히로의 영원한 친구이자 든든한 안방마님인 노다를 통해 포수라는 포지션에게도 관심을 보내줍니다.

<크게 휘두르며>의 아베 역시 이러한 노다의 연장선상에 놓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아베는 노다 처럼 포수는 좋은 투수의 조력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투수는 좋은 포수를 위한 부속품으로 생각하죠. “내 사인에 고개를 젓는 투수를 제일 싫어 한다”라는 아베의 말은 그의 생각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심지어 아베는 감독에게 구속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듣고서 빠른 공을 던지고 싶다는 미하시를 향해 자신의 말을 안 듣는다고 심술을 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도 결국은 투수를 위한 작품입니다. 아베의 리드는 분명 그간 발휘하지 못했던 미하시의 실력을 이끌어내지만 아베의 리드대로 정확히 던진 공은 그대로 담장 밖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포수의 리드가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포수의 리드만으로는 경기에 이길 수 없습니다. 작품의 제목인 <크게 휘두르며>도 타자의 큰 스윙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 손을 높이 들어올리는 ‘와인드 업(Wind-up)’ 동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투수가 결국은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만화라는 것이 느껴지죠.

실제로 야구에서 가장 괴로운 포지션은 포수입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3시간 가까운 경기시간의 절반을 쭈그리고 앉아있어야 하고, 무거운 보호 장비를 몸에 착용해야 합니다. 게다가 투수가 던진 공이나 타자가 친 공에 맞기라도 하면 그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크게 휘두르며>가 한 편으로 반가운 것은 기존 야구만화에서는 너무나 무시되기 십상이던 포수라는 포지션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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