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독자 편집자 비평가, 모두의 이야기
작가 독자 편집자 비평가, 모두의 이야기
  • 북데일리
  • 승인 2007.01.2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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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어렸을 때 제 꿈은 치과의사였습니다. 멀쩡한 어머니의 이를 몽땅 뽑고 새 틀니를 만들어 드리겠다며 공포스런(?) 노래를 부르고 다녔었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처음 배웠던 영어가 재미있어 외교관이 되어 국위선양을 떨치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다 영어로 된 영화들을 많이 보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가서부터는 영화평론이 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가서는 15초의 미학, 광고에 미쳐 지냈었죠. 뭐, 물론 지금 영 동떨어진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만일 저 중 하나 다시 도전해 볼래? 한다면, 그냥 웃고 말 것 같습니다. 네, 제 가장 큰 문제는 한 우물을 못 판다는 거죠. 이 문제만 해결되면 전 뭐가 돼도 될 겁니다. 뭐, 이런 생각을 저만 하는 것은 아닐 거라 여기며 위안 삼습니다.

제가 이번에 여러분 앞에 놓아드릴 책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열린책들, 2006) 역시 제게 이런 저런 느낌을 들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미 소설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독자인 저는, 소설가와 비평가라는 직업에 적잖은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터인데, 책을 읽고 나서 편집자의 영역도 매우 매력적이라는 것을 느꼈으니 말입니다. (이러다 아마 평생 질풍노도의 시기만 겪을 거 같습니다.) 아무튼, 소설가와 편집자, 비평가와 독자가 모여 멋진 소설, <소설>이 완성되었습니다.

묘했던 건, 96년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소설이었다는 겁니다. 확실한 고민 없이 그저 흥미로만 읽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소설>이 주는 묵직한 느낌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 십여 년 세월의 무게일까요? 소설이 흥미위주이거나, 눈물샘만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독자이기에, 읽으면서나 읽고 나서도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작품을 좋아하는 편인데,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은 이 모두를 아우르고 있어 더욱 만족스러웠습니다.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꺼운 <소설>은 소설가, 편집자, 비평가와 독자를 각 장마다 1인칭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각장의 주인공들은 당연히 다른 장에서 주변인물로 등장하지만, 한 장씩 따로 읽어도 전개에 무리가 없는 소설입니다. (해리포터 같았으면 분명 네 권으로 분리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같이 읽어도 읽히는 속도가 경쾌하며, 뒷장으로 갈수록 교집합의 영역이 넓어짐을 확인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이 꼭 어울리는 소설입니다.

제임스 미치너는 <작가는 왜 쓰는가>(1995, 미세기)에서 작가가 쓰는 한, “왜 쓰는가?”에 대한 질문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며 글 쓰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폴 오스터 역시 글 쓰는 이유를 숙명으로 인식합니다. 의사나 경찰관 등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에 해당한다면, 작가가 되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소설>은 요더와 베노의 모습을 통해 폴 오스터가 말한 소설가의 ‘숙명’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의 피할 수 없는 비루한 모습 역시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편집자들의 귀감이 되었다고 하는 편집자 이본 마멜은 독자들이 읽고 싶어 하는 멋진 소설을 찾아내고, 시류에 맞춰 논픽션 책을 엮어낼 작가를 발굴하며, 15년이 지나도 읽고 싶어 하는 그런 책을 만들어내는 유능한 편집자입니다. 출판일은 저는 개인적으로 접해보지 못했던 영역이라서 비교적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미국 출판업계의 모습이 아주 흥미로웠던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출판계와는 양상이 꽤나 혹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요.

얘기가 길어지면, 맛있는 과일을 베어 물었을 때의 즐거움을 빼앗을 수 있으니 이쯤에서 간략하게 줄일 랍니다. 이 밖에도 세 번째 장에는 똑똑하지만 우월주의자인 비평가 칼 스트라이베르트의 이야기가, 네 번째 장은 완고쟁이 제인 갈란드가 문학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비평가의 장에서 데블런 교수의 `말하지 마라. 대신 글로 발표하라.`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심하게 공명을 일으켜 한참 고역을 치렀습니다.

욕심이지만,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일까요? 저는 이 책을 소설을 좋아하는 ‘모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책을 쓰고, 그것을 발표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으니 글쓰기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고, 출판일이나 편집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의 모델링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니 그 분들에게도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미 읽어보았을지 모를 비평가들에게도, 독자들에게도 모두 권하고픈 소설, <소설>입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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