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소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소설
  • 북데일리
  • 승인 2007.01.26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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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말은 어렵다. 받아들이자니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논다. 책에서 배웠고 배웠으니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도저히 마음 속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쩌면 한창 개고기 문제로 시끄러웠던 브리짓 바르도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그녀도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테지만 도저히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게 아닐까. 독자의 상식을 시험하고, 문화 상대주의를 생각하게 하며, 너와 나의 간극을 생각하게 하는 책. 바로 <아내가 결혼했다>(문이당. 2006)다.

일부일처제, 그 견고한 짜임새에 도전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그는 그녀를 너무 사랑한다. 평범한듯 보이는 그녀는 자신과 함께 새벽을 지세우면서 함께 축구를 볼 수도 있다. 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행운인가. 일부일처제의 틀을 거부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붙잡아서 결혼 한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곧 그녀는 사랑하는 이가 생겼다며 그와 결혼하고 싶단다. 그녀가 만든 모계 사회에서 남자 둘은 참 기묘한 삶을 살게 된다. 마치 그녀를 온전히 갖지 못한다면 절반이라도 가지겠다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처럼, 그는 그녀의 절반을 갖는 생활을 해나간다. 기막힌 모계가족이 탄생한 셈이다.

상당히 논란거리가 될 소재임에는 틀림없다. 어쨌든 실정법상 한국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때까지 이 사람만을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일부일처제 사회이니 말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모계 사회 이야기를 하고, 일부일처제도 결국 하나의 경우일 뿐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설득한다. 소설에서는 일부일처제는 하나의 경우의 수일 뿐이라는 사실을 방대한 자료들을 들이 밀면서 이야기한다. 독자들이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이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독자, 그들이 고민해야 할 시간

<아내가 결혼했다>는 시작부터 줄곧 이 소설은 대안가족을 이야기하는 글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 그녀를 절절하게 사랑해서 그녀를 포기할 수 없는 첫번째 남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일반인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바라봤다는 말이다. 대안 가족을 논의하기 전에 먼저 지금까지 본인이 지니고 있던 사고 체계에 균열이 생긴다. 어쨌든 저쨌든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아무렴 어떠냐는 식으로 사고를 전개하며, 누가 봐도 대안가족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형태를 제시한다.

이 소설이 가진 최대의 미덕은 심각하지 않고 웃기다는 점이다. 심각하고도 파격적인 소재를 이야기하는 것임에도 혼자 끙끙대며 고민하는 첫번째 남편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심각하지 않다. 전혀 심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특히 축구에 대한 에피소드를 채워넣어서 웃음이 나는 글이기 때문에 상당 부분 읽는 독자의 부담감을 덜었을 것이다. `일단 재미있게 읽었다`로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될 것이지만, 그 이후부터 이제 고민에 들어가게 된다. `도대체 내가 읽은건 무슨 얘기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제부터 독자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야한다. 그가 그녀의 반쪽이라고 갖겠다면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 이제 공은 독자의 몫이다.

박현욱, 그는 제 2의 박민규일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소설 기법에 있어서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상당히 비슷하다. 박민규는 야구라는 소재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누군가는 낙오자라고 부르는지도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를 웃음으로 담아냈다. 박현욱 역시 그녀를 설명하기 위해 일반인에게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축구 에피소드를 활용했다. 물론 글에 담은 본질적인 이야기는 상당히 다르지만 테크닉 면에서는 부인할 수 없는 유사성을 보였고, 당장 이 소설이 그렇게나 많이 작년에 회자된 것이 그를 반증하는 것이다.

박민규는 <지구영웅전설>로 독특함을 과시했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서 대중에게 입지를 확고하게 다질 수 있었다. 두 작품이 그의 독특한 입담으로 대중적인 호응을 받았다면, 그 이후 작품들은 대중과 매니아 사이쯤에서 진자의 추처럼 왔다갔다 왕복하고 있다. 박현욱은 <아내가 결혼했다>외에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고 후속작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가 어떤 작가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까지 받은 적도 있으니 한번쯤은 후속작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그는 사람들이 `읽는` 글을 써내는건 분명하지 싶다. 과연 그는 제 2의 박민규가 될 수 있을까?

[이경미 시민기자 likedream@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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