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복거일
19. 복거일
  • 북데일리
  • 승인 2007.01.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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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신원문화사. 2002)

“소설을 거짓말과 같은 뜻으로 쓰는 우리 사회의 관행은 참으로 불행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길로 소설만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북데일리] ‘사회평론가’ ‘자유주의자 논객’ 등 복거일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지만 ‘소설가’라는 말처럼 그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단어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복거일에게 있어 ‘소설’이란 혹자들이 흔히 말하는 ‘거짓말’의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산문집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경덕. 2006)을 발표한 그는 “‘소설을 쓴다’는 표현에 ‘거짓말을 지어낸다’는 뜻을 처음 담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말은 쓰는 사람들의 무지를 드러내고 우리 사회의 비속함을 상징한다”며 “소설을 비하하는 관행은 실질적으로도 크게 해롭다”고 소설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복거일은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잠재적 능력을 펼 수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누구에게나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른 사람들이므로 그런 이해의 부족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손실이라는 것.

보다 심각한 손실은 삶을 성찰할 기회를 잃는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음으로서 우리는 살아보지 않은 삶의 모형들을 알게 되고 평가하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 해 가치의 연산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계적 상황에서 어떤 길을 골라야 하는 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길은 없는지,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궁극적 기준은 무엇인지. 소설은 이런 본질적 물음들을 자신에게 던질 기회를 제공 한다”며 소설의 가치를 역설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과학’과 ‘기술’로 꼽는 그는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과학과 기술의 이야기를 구체화 한 과학소설을 즐겨 읽는다. 쥘 베른의 <바다 밑 2만리>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오웰의 <1984년> 윌리엄 골딩의 <파리들의 임금>은 그가 즐겨 읽는 과학소설의 고전.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 미국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의 <화성(Mars)> 3부작 역시 지금 세상을 제대로 조망해 깊이 살피도록 돕는 작품이다.

복거일이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책은 <로빈슨 크루소>(신원문화사. 2002). ‘쉽지 않은’ 글을쓰는 그가 ‘너무나 잘 알려진’ 이 작품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일까. 짐작대로, 그 배경에는 특별한 의미와 추억이 배어 있었다.

먹고 입는 것은 물론 읽을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던 유년 시절. 어린 복거일이 어렵사리 구해 읽은, 가장 재미있었던 책은 <로빈손 크루소>.

그가 이 책을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저녁 먹고 읽기 시작 했는데 잘 때가 되어도 놓을 수가 없었다. 당시엔 두 방 사이의 벽에 구멍을 내고서 전등 하나를 달아 놓아 두 방을 함께 밝혔었다.

그런 전등 역시 일찍 꺼지게 마련. 궁리 끝에 몰래 손전등을 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어른들이 알면 손전등 약을 닳게 한다고 불호령이 내렸을 터.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이불을 둘러쓰고 손전등으로 비춰가면서 밤을 새워 읽던 책이 바로 <로빈슨 크루소> 였다.

“난파한 배에서 살아남은 선원이 혼자서 외딴 섬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를 낳은 사회와 문명의 모습을 또렷이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읽어야 할 중요한 책 이지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이 책은 복거일에게 여러모로 남다른 책이다. 때문에 아직 읽지 못한 이들에게 일독을 권했다.

복거일의 진중한 글쓰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성실한 독서다. 추천 할 책이 너무 많다며 난감해 하던 그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도 꼽았다. 그는 “요즈음 우리 사회에선 전체주의의 조류가 부쩍 높아 졌습니다. 그러나 전체주의적 요소들을 실제로 판별하는 일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에 관한 지식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지식을 얻는 데는 반세기 전에 씌어진 <노예의 길>보다 나은 책이 드뭅니다”라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산문집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을 통해 소소한 일상과 작은 생각들을 꼼꼼히 담아낸 복거일은 “내 안에 높은 온도를 낼 열정이 남아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글을 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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