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창완 "내인생은 아직 제목없는 간판"
가수 김창완 "내인생은 아직 제목없는 간판"
  • 북데일리
  • 승인 2005.08.30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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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토크쇼에서 가수 겸 탤런트 김창완이 어머니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김창완 모자는 형제밴드 산울림 결성과정과 `인간 김창완`에 대한 면모를 숨김없이 털어놓아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어머니의 따뜻하면서도 유머가 깃든 말은 연신 방청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리포터가 옷가지를 집어 들어보이며 "이거 아드님이 해주신 거예요?"라고 물어보자 어머니는 "아니요, 그건 며느리가 해 준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연이어 리포터가 다른 물건들을 들고 "이건요, 이건요?" 라고 물어보자마자 어머니는 "아니요, 그것도 며느리가 준거구요. 우리집은 며느리들이 다 알아서 하지 아들들은 신경 안써요"라고 무심하게 말했다. 그래도 김창완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아들에 대한 서운함보다 오히려 고마움과 든든함이 가득했다.

김창완의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2005 황소자리)에서도 어머니에 관한 일화가 눈길을 끈다.

냉면집에서 가족모임을 갖던 김창완의 어머니가 어렵사리 김창완에게 말을 건넨다.

"지난번 그 드라마 있잖아, 거기서... 왜 배종옥이가 니 뒤통수 냅다 갈기는 장면 나오잖아, 어멈이 그거 보고 뭐라 안하든?"

김창완은 대꾸없이 열심히 냉면만 질걸질겅 씹었다.

또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질문. "얘, 너 그 드라마에서 오토바이타고 다니면서 젊은 여자애들하고 바람피우잖아. 어멈이 그거 보고 별 말 안하드냐고?"

김창완은 연신 육수를 맛있게 들이키며 한마디로 어머니의 궁금증을 쓰윽 마무리해 버린다.

"어머니, 냉면 드세요."

세월이 비켜간듯한 외모에 담백한 목소리와 밝은 미소, 이것만이 김창완의 매력은 아니다. 반백년을 조금 넘게 살아온 시간을 나직이 관조하는 그의 필체를 통해 진정한 인간 김창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아이 김창완부터 소년 김창완, 사춘기의 김창완 그리고 성인 김창완이 모조리 담겨 있다.

김창완은 5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른 나이였지만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놀 친구가 없었던 탓에 어머니가 사정사정해서 가입학이 이루어졌다.

학교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던 김창완은 수업 종소리의 시작과 끝을 이해하지 못해 친구들과 반대로 행동하기 일쑤였다. 시작 종인줄 알고 교실에 들어가면 다들 놀러나간 뒤였고 노는 시간인 줄 알고 운동장에 나오면 다들 수업하고 있었다. 김창완은 본의아니게 청개구리가 되어버렸다.

담임 선생님은 그런 김창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완이는 자연인이야." 선생님은 받아쓰기 보다 어려웠던 종소리의 의미를 미소로 깨우쳐 줬다.

결혼 후, 만학도였던 아내의 졸업식을 까맣게 잊고 전날의 취기를 이기지 못해 구들장 신세를 져야 했더 김창완.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진심을 전하는 사랑의 편지를 쓰면서 단어 하나 하나에 무척 고심한다.

김창완의 글은 소박하다. 찬밥에 고추장으로 비벼 바닥까지 팍팍 긁어 먹은 다음 입가심으로 시원한 수박 한 입 콱 베어물 때의 느낌이다.

슬픈 이야기는 슬프지 않게, 즐거운 이야기는 더 즐겁게 풀어쓰는 독특한 문체로 인해 읽는 재미와 함께 인간적인 호감도까지 높여준다.

김창완은 "내 인생은 아직 제목없는 간판이다. 간판이 이름 덕을 보는 경우도 있고 이름이 간판에 묻혀 사람들이 기억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자기 이름 석자로 자아와 인생을 찾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라고 적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김창완은 다양한 연령대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는다. 그가 40~50대에게 던지는 충고는 조금 아프다.

"당신들은 교활하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알고 있는 나이지만 항상 새 양복으로 갈아입으려고 한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사진 = 78년 `산울림` 3집앨범 출시 당시 멤버들과 함께)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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