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묘한 뉘앙스가 풍기는 작품이다. 왜 제목에 ‘서커스’라는 단어를 붙였을까. 서커스라는 묘기는 통하여 사람을 놀라게 하는 동시에 위험한 놀이다. 읽고 난 후에야 알게 됐지만 제목이 암시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실체를 찾지 못한 주인공들이 겪는 내적 상처와 쓸쓸한 사랑의 부재를 암시 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조선족인 해화와 동생인 윤호. 해화의 사랑은 잘 포장된 카스테라와 비슷하다. 겉으로는 맛있는 빵을 발견해 행복에 빠져있는 사람의 삶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심하게 부푼 이스트의 속처럼 텅 비어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시어머니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동생 윤호는 장애자인 형을 조선족인 해화와 전략적으로 결혼을 성사시킨다. 처음부터 사랑은 전혀 없는 아슬아슬한 퍼포먼스였던 것. 신랑을 연민의 정으로 감싸주던 혜화는 어느 날 사랑은 동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종일 사랑을 힘들게 느낀다. 서커스 묘기를 부리면서 얻는 사랑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보이는 곳에서는 즐거움을 주는 것 같지만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윤호는 형을 결혼시킴으로서 자신의 짐을 던져버리고자 했지만 그 감정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결국 스스로가 놓은 덫에 걸려서 자신만 고립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뿌리가 없는 사랑은 정체를 드러내고야 만다. 사랑이라는 것. 어쩌면 구름과 같은 모습일 수 도 있다. 겉으로 아무리 포장을 잘 해도 진심이 없다면 불행한 종말을 맞이하게 됨을 소설은 말한다.
작가의 청명한 목소리가 소설 곳곳에 울려 퍼진다. 사랑은 열정이나 아름다운 포장이 아니라 따뜻한 위안이라고. 상처를 서로 쓰다듬어 주고 옹이진 가슴을 공유할 줄 아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낯설지만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살아가는 게 사랑이고 삶이라고. 힘들지만, ‘시지프스 신화’의 숙명적인 업보를 짊어지고 고지를 향해 올라가는 것이 누구나의 삶이고, 사랑이라고 소설은 역설한다.
<잘가라 서커스>
그대는 죽고 나는 살아서
난바다에 닻을 내리면
심해의 바다는
적요함만 치렁치렁하다.
요동치던 격정의 사랑도
침잠하여 하강중이다.
들끓던 욕정도
탈지면처럼 흡수되어
푸르디푸른 고요뿐이다.
눈을 뜨고
눈을 감아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
이제 무엇을 사랑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이제 무엇을 사랑이 아니라 부정하지도 못한다.
여기서는 고난도의 기예도
위험한 서커스도 필요 없다.
정처 없이 둥둥 떠다녀도
우리가 부둥켜 앉을 건 사랑뿐이다.
[양진원 시민기자 yjwyo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