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밥버릇이 책버릇
우리들 밥버릇이 책버릇
  • 북데일리
  • 승인 2007.01.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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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먹는 풀과 읽는 책

[북데일리]서울에서 홀살이(자취)를 열 해쯤 했습니다. 이제는 서울도 떠나 시골집에서 혼자 지냅니다. 1995년부터 여태껏 제 밥은 제가 차려서 먹습니다. 밥이든 반찬이든 제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차려서 먹습니다. 지난 2003년 9월부터 2006년 봄까지 충주 무너미 마을에 있는 이오덕 선생님 댁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때는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남이 차려 주는 밥을 먹었다는 소리입니다. 남이 차려 주는 밥을 먹으면, 밥 준비며 밥상 차리기며 설거지며 모든 일손을 덜게 되어 몸은 홀가분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가볍지 않아요. 고맙게 받아먹으면서도 늘 미안하거든요. 그냥 제 스스로 해 먹는 일이 단출하면서도 마음이 가볍습니다.

2006년 봄, 서울에 남아 있던 살림을 모두 갈무리하며 시골로 옮겼고, 이곳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이때부터 혼자서 밥을 해 먹는 삶으로 돌아옵니다. 아까 새벽에 일어나서 누런쌀을 좀 불려놓았고, 조금 뒤에 냄비에 밥을 끓이면 준비 끝입니다. 반찬이야 뭐 차릴 게 있습니까. 앞마당이나 뒷산에서 자라는 온갖 풀이 다 반찬입니다(겨울엔 풀이 없으니 가을에 챙겨 놓은 배추나 무나 감자나 고구마를 먹고요).

혼자서 밥을 해 먹을 때는, 일하다가 배고프면 밥하고, 일을 좀 많이 한 날은 밥도 많이 먹고, 일을 적게 해서 안 배고프면 건너뛸 수 있으며, 늦게 먹거나 일찍 먹기도 합니다. 반찬이라고 해서 뭘 잔뜩 차리거나 지지고 볶을 것 없이, 온 산과 들에서 자라는 풀을 된장에 찍어서 먹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나 된장에 찍어 먹었지, 나중에는 날것 그대로 먹게 되네요. 때때로 다른 것을 먹고 싶으면 자전거 타고 읍에 나가 고등어나 참치를 사서 먹기도 합니다. 국수를 삶기도 하고요.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요새 무슨 웰빙이다, 채식이다 그러는데요, ‘채식’을 하는 분이라면 집 앞 마당이나 뜰, 또는 길가나 온 들판, 산과 냇가에서 자라는 풀을 뜯어서 먹으면 돼요. 굳이 비싼 ‘수입 푸성귀’를 ‘대형 할인마트’에서 사먹을 까닭 없습니다. 굳이 유기농이니 뭐니 가릴 까닭 없어요. 들풀 뜯어다가 물에 헹궈 먹으면 돼요. 안 헹궈도 그만이고요.

그러면 어떤 풀을 먹으면 좋을까요? 아무 풀이나 먹어도 될까요? 네, 아무 풀이나 먹어도 됩니다. 처음 이렇게 먹을 때는 그래도 되나 싶었고, 어떤 풀을 먹어야 될까 궁금하기도 했으며,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아무 풀이나 뜯어서 먹어 보니, 걱정할 일이란 없습디다. 못 먹을 풀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우리 둘레에는 못 먹는 풀보다 먹을 수 있는 풀이 훨씬 많습디다. 아니, 둘레에서 보는 풀은 거의 모두 먹을 수 있어요. 농촌에서 잡풀이라고 김매어 내다 버리는 풀도 하나하나 살펴보면 모두 ‘나물로 무쳐 먹는 풀’입니다.

다만 김매는 일손이 바빠서 이를 하나하나 거두어서 먹지는 않을 뿐입니다. 게다가 너무 흔하니 따로 마음 쓰지 않을 뿐이고요. 그리하여, 도라지나 봉숭아나 달개비나 냉이가 밭둑에서 자라거나 밭 한복판에서 자라면, 이들은 모두 잡풀 대접을 받아 뽑혀 버리고 말아요.

지지난 봄에 처음 들었던 이야기인데, 안동에 사는 권정생 할아버지는 당신이 어렸을 적에 느티나무 잎을 따서 떡을 해 먹었다고 하더군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먹을거리가 아주 없었기에 느티나무 잎까지 뜯어서 먹었을까 싶지만, 버드나무잎, 소나무잎, 포도나무 잎이라고 못 먹을 것 없습니다. 깻잎도 먹으나 콩잎도 먹고 고춧잎도 먹고 고구마 잎도 먹습니다. 다래 잎도 칡잎도 딸기 잎도 호박잎도 오이 잎도 참외 잎도 모두모두 훑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풀잎을 먹을 때에는, 여러 가지를 골고루 먹어야 한답니다. 모든 풀을 다 먹을 수는 있지만, 한 가지만 먹으면 독이 될 수 있다더군요. 또, 한두 가지 풀만 먹으면 입이 심심해요. 이 풀 저 풀 골고루 뜯어서 냠냠 씹으며 풀마다 다른 냄새와 맛을 느끼면 재미있습니다. 쓰고 씁쓸하고 쌉쌀하고 아린 맛까지 골고루 느끼다가 살짝 달근한 맛도 느끼면.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곡식으로 밥(쌀)만 먹지 않아요. 쌀도 풀(열매)이지만, 반찬으로 온갖 다른 풀(열매)을 먹고 있어요. 따로 채식을 한다고 하지 않아도 풀을 많이 먹습니다. 김치, 고추장, 된장, 간장, 두부, …… 모두 곡식, 곧 풀에서 나옵니다. 감자, 호박, 가지, 무, 빨간무, 오이, 옥수수, 고구마, …… 이런저런 갖가지 풀을 참말 골고루 먹어요. 예부터 이렇게 밥을 먹어 왔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굳이 고기를 먹지 않아도, 따로 고기를 먹지 않아도 얼마든지 힘을 잘 썼구나 싶고, 자질구레한 병치레도 없었지 싶어요(돌림병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먹나요. 풀(열매)도 몇 가지 안 먹습니다. 밥을 먹어도 흰쌀만 먹지 누런쌀은 거의 안 먹고, 보리나 콩 들어간 밥을 찾아서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더욱이 풀과 고기 비율조차 올바르지 않아요. 이런 밥버릇에 길들다 보니, 몸이 쉬 병듭니다. 마음도 몸 따라서 나날이 병들어 갑니다. 마음이 따라서 병들어 가니 생각이 병들고, 둘레를 보는 눈길도, 이웃을 헤아리는 마음씀도 병들지 싶어요. 나아가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책을 찾아보는 눈높이도, 책을 읽어서 얻은 지식을 나누려는 마음가짐까지 병들어요.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몸이고 마음이고 생각이고 죄 병들어 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제대로 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참답게 살아갈 길을 살피지 못합니다.

책 이야기를 해 볼까요. 우리 둘레에는 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하루하루 수없이 쏟아집니다. 쏟아지는 만큼 사라지는 책이 많고, 헌책방에 묻히는 책도 많습니다. 글로 엮은 책이건 그림이나 사진으로 엮은 책이건 참으로 많은 책이 우리 둘레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이 많은 책을 어떻게 읽고 있나요? 한두 가지(갈래) 책만 골라서 읽나요? 몇 가지 책에만 푹 빠져 있나요? 새로 찾아서 보는 책도 늘 그게 그거인 책이지 않나요? 우리를 둘러싼 책이 참말 많고 가짓수며 갈래도 골고루 넘쳐나 있으나, 이 많은 책을 제대로 못 느끼면서 속 깊은 책맛도 못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요. 책마다 다 다른 맛을 간직하고 있는데, 책마다 서로 다른 모습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데, 이처럼 다른 맛과 모습과 이야기를 두루 살피는 즐거움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있지는 않나요.

갈래를 따로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두루 살피며 저마다 간직한 깊이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읽기일 때, 비로소 우리한테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제아무리 맛나고 몸에 좋은 밥과 반찬이라고 해도, 한 가지만 치우쳐 먹으면 오히려 독이 되고 배탈이 나잖아요. 감자가 몸에 좋다고 감자만 먹을 수 없고, 배추가 몸에 좋다고 배추만 먹을 수 없으며, 귤이 몸에 좋다고 귤만 먹고는 살 수 없습니다. 책도 골고루 읽어 주어야 좋다고 느낍니다. 만화책을 즐기든, 성경을 줄기차게 읊든, 소설에만 푹 빠지든 그래요.

만화를 즐긴다면 몇몇 작가나 작품만이 아니라 두루두루 볼 줄 알고, 기독교 책이 좋다면 여러 목소리를 들려주는 종교책을 찬찬히 살필 줄 알고, 소설을 좋아한다면 수많은 작가와 작품을 골고루 읽을 수 있어야 좋지 싶어요. 문학을 즐기더라도 자연과학을 볼 줄 알며, 이공계 공부를 하더라도 사회와 역사를 볼 줄 알고, 철학 공부를 하더라도 교육책을 볼 줄 아는 가운데,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도 어린이책을 가만히 즐길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사진쟁이도 그림세계를 살필 줄 알고, 그림쟁이도 인문학 책을 즐기며, 교사도 철학책을 읽고, 신문기자도 시집을 읽어야지 싶습니다.

자기가 몸담은 곳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는 책을 보는 한편, 자기가 잘 모르는 곳 이야기를 알려주는 책도 줄기면서 재미, 울림, 감동, 새로움, 놀라움, 보람들을 선사하는 책을 알뜰히 만나면, 우리 몸과 마음이 알맞게 어우러지면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튼튼해지겠지요. 흔들림이 없겠지요.

(2)우리 둘레에 자라는 풀이라면 어느 풀이든 먹을 수 있듯, 우리 둘레에 있는 책은 어느 책이든 읽을 수 있습니다. 무슨 책이든 우리한테 말을 걸고 있어요. 살뜰한 줄거리를 담은 채 기다리고 있어요. 때로는 거울이 되어 ‘이렇게 거짓말을 뇌까리면 참말로 큰일 나겠군’ 하고 깨우쳐 줍니다. 때로는 길잡이가 되어 ‘아하, 이렇게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도 좋구나’ 하고 일깨우곤 합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다 다른 책을 골고루 맛보며 자기 삶을 가꾸는 사람보다, 어슷비슷한 책을 손쉽게 찾아서 보려는 사람이 더 많고 자꾸자꾸 늘어나지 싶습니다. 학교교육 때문일까요? 대학교만 바라보는 입시교육 때문일까요? 대학교를 마친 뒤에도 일류기업에서 펜대 굴리고 자판 두들기며 높은 일삯 받는 곳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매이기 때문일까요? 자기 꿈을 펼치기보다, 한갓지게 돈 벌어 마음 놓고 펑펑 쓸 수 있는 일자리, 이를테면 쇠밥그릇이라는 일자리를 얻고 싶기 때문일까요?

‘나만 좋으면 그만’인 세상으로 흐르고 있어요. ‘남들까지 잘살기보다 나 하나 잘살면 그만’인 세상으로 흐르고 있어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언론매체에서도, 또 책에서까지 ‘나 하나 잘되도록 하는 데에만 마음 쓰자’고 외치고 있어요.

조금만 마음을 느긋하게 다스리고 둘레를 살펴보면, 우리 일터나 집 가까이에 있는 책방과 도서관을 찾을 수 있는데. 책방과 도서관에서 느긋하게 책꽂이를 살피면, 우리를 기다리는 책을 한가득 만날 수 있는데.

어쩌면 우리들은 느긋함을 잃거나 내버리고 있는지 몰라요. 그러니 우리 둘레에 있는, 가까이에서 찾아갈 수 있는 책방과 도서관을 못 보겠지요. 책방과 도서관마다 가득 꽂히거나 쌓여 있는 맛있는 책을 못 알아보겠지요. 아니, 알아보려고도 않습니다. 알아보고 즐기면 좋은 줄부터 모르니까요.

그래, 우리가 애쓰고 나서서 읽는다면 차근차근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그다지 눈길을 두지 않는다고 딱히 손해 볼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할까요? 참 흔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풀이지만, 저마다 이름이 어떻게 되고 맛은 어떤지 잘 모르기 일쑤고, 알고자 애쓰는 이들이 드물어, 먹어도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듯이 말입니다.

하긴, 아무리 몸에 좋은 풀이라 해도 ‘내가 먹기 싫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하면 그만이겠네요. ‘내가 대충대충 먹고 빨리 죽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하면 할 말이 없겠네요. 우리 마음을 살찌우는 책을 안 읽고 오로지 돈만 많이 벌고 남들 위에 올라서서 권력을 누리고 싶다는 사람들한테, 책 한 권이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지 모르겠네요.

다함께 어우러지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누구나 고른 권리를 누리며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안 바라는 사람들한테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를 안 바라는 사람들한테는, 남자라고 해서 또 여자라고 해서 푸대접받지 않는 세상을 안 바라는 사람들한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똑같은 사람대접을 받으며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세상을 안 바라는 사람들한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은 노동자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안 바라는 사람들한테는, 시골 농사꾼이 핸드폰 공장보다 안 중요하다는 나라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르려는 사람들한테는, 맛난 풀이든 살가운 책이든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지 모르겠네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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