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몰랐던 세상을 알려주는 책
미처 몰랐던 세상을 알려주는 책
  • 북데일리
  • 승인 2007.01.1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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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에서 3 : 충북 청주 <보문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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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운 날, 걸어 다니면서

[북데일리] 걷는 일은 즐겁습니다. 비록 배가 조금 고프더라도 ‘한두 끼쯤 거르면서도 살 수 있지 않나’ 생각하면서 걷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혼자 걸을 때는 혼자대로, 둘이 걸을 때는 둘대로, 셋 넘게 함께 걸을 때는 또 이때대로 다 다른 느낌과 생각으로 걷습니다. 혼자 걸을 때 보고 부대끼는 모습은 그저 홀로 마음에 새기고, 둘이나 셋 넘게 함께 걸을 때는 제 눈높이와 눈길이 닿는 모습을 도란도란 이야기로 들려주고, 또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모두 똑같은 사람임을 길을 걸으며 느낍니다.

찻길을 오가는 자동차가 뚝 끊겨 조용하게 되었을 때는 제 귀를 간질일 살아 숨 쉬는 소리가 있을까 쫑긋쫑긋 여기저기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합니다. 건물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햇볕을 쬐기도 합니다. 더운 여름에도 그늘진 곳보다는 볕바른 곳을 걷고, 추운 겨울에도 볕이 잘 드는 쪽으로 걷기를 좋아합니다. 볕이 좋을 때는 해가 있는 쪽도 올려다보지만, 해가 없는 쪽도 허리를 뒤로 많이 꺾으며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파란하늘이면 눈이 부셔서 제대로 뜨기 어렵지만, 요즘 하늘은 눈을 찡그리지 않아도 하늘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많이 더러워졌습니다. 뿌연 하늘에서는 눈이 부시지 않으니까요.

한 손에는 자전거를 끌고 한 손에는 사진기를 들고 길을 걷습니다. 청주도 도시라 서울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서울만큼 복작복작은 아닙니다. 다만, 청주에서도 명동 같은 거리가 있어 온통 옷가게가 줄줄이 늘어선 곳도 있는데, 이곳만 벗어나면 그냥 사람 사는 시내입니다.

〈2〉 세상을 알게 해 주는 책

아침에 여관에서 나온 뒤 죽 이리저리 걷다가 중앙로로 돌아옵니다. 아직 아침 이른 때라 문을 안 연 헌책방도 있습니다. 그래서 길턱에 잠깐 앉아 쉬었다가 중앙로 맨 끄트머리에 자리한 〈보문서점〉으로 들어갑니다. 여러 해 만이군요. 다섯 해 만인지. 아저씨는 그대로 계신가 하고 고개를 살짝 내밀어 보는데, 아주머니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설마, 책방 임자가 바뀌었나?

가방은 한쪽에 내려놓고 사진기는 아직 꺼내지 않습니다. 조용히 이리저리 둘러봅니다. 헌책방 〈보문서점〉은 청주에 있는 다른 곳보다 크기가 작아서 둘러볼 자리는 많지 않은 편입니다. 본 자리 또 보고, 책탑을 기우뚱 기울여서 뒤쪽에 쌓인 책도 살피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위쪽에 꽂힌 책도 봅니다. 신창원 씨 이야기를 다룬 책을 선 채로 읽어 내립니다. 꽤 잘 읽히는군요. 살까 말까 하다가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습니다. 신창원 씨는 지금 어디에 있을는지. 감옥에서 무기수로 있는가요?

책을 보는 동안 〈보문〉 아저씨가 책을 실은 차를 타고 들어옵니다. 책방 임자는 아저씨 그대로이고, 아주머니가 잠깐 가게를 보고 계셨나 봅니다. 아저씨가 책 사러 나갈 때만 가게를 지키면서요.

<장영희-문학의 숲을 거닐다>(샘터, 2005)라는 책이 보입니다. 책 앞쪽에 무슨 편지가 붙어 있는데, 어느 회사에서 직원들한테 무슨 선물로 돌렸던 책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뭔 편지를 이렇게 여러 장 스티커종이에 인쇄해서 덕지덕지 붙여놓았는지. 차라리 봉투에 담아서 꽂지. 이렇게 하면 책이 망가지는데.

.. 여기서 ‘산다’는 것은 물론 사람답게 제대로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삶을 의미하지만, 생명을 지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랑하는 일은 남의 생명을 지켜 주는 일이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생명을 지키는 일이 기본 조건이다. 사는 게 힘들다고, 왜 날 못살게 구느냐고 그렇게 보란듯이 죽어 버리면, 생명을 지켜 주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사랑할 몫도 조금씩 앗아가는 것이다 .. 〈68쪽〉

‘장영희’라는 분은 누구인지, 또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언젠가 번역일 하는 분이 쓴 글에 ‘장왕록 선생 따님이자 영문학 가르치는 교수’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이름 석 자를 새겨 놓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분 책을 처음으로 만납니다.

.. 내가 고3이 되자 아버지(고 장왕록 박사)는 여러 대학을 찾아다니시며 입학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구걸하듯 사정하셨지만, 학교 측은 어차피 합격해도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히 거절했다 .. 〈38쪽〉

장영희 님은 장애인이라는군요. 그리하여 아버지 장왕록 선생이 무척 애를 먹었나 봅니다. 이제 와서 생각한다면 참 씁쓸한 지난날인데, 장영희 님이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기까지 겪은 어려움이 오늘날에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어쩌다가 한두 번, ‘대입시험에는 붙었으나 학교에서 받아 주지 않아 쫓겨난 장애인 대학생’ 이야기가 기사로 나오잖아요. ‘장애인 학생 하나 때문에 편의시설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래서 나라안에 있는 그 많은 대학교 가운데 장애인이 마음놓고 ‘시험이라도 치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열 군데도 안 될걸요. 시험에 붙었다 해도, 강의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곳은 아마 한 곳도 없지 싶어요. 국립대학교인 서울대학교만 생각해도 그렇지요. 그 멀리 떨어진 건물 사이를 어찌 다니겠으며, 계단밖에 없는 건물은 어찌 오르내리며 뒷간에는 어찌 가고 밥은 어떻게 먹을는지. 좁기로 소문난 한국외대에서도 장애인이 다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헌책방 ‘정은서점’ 따님도 장애인입니다. ‘정은’ 아저씨는 따님 대학교 시험 치르는 일로도 골머리를 많이 썩였고(시험을 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대학교가 오직 두 군데, 연세대와 서강대밖에 없었답니다. 장애인 처지로 다닐 수 있는 곳이), 3수 끝에 가까스로 서강대학교에 붙어 네 해 동안 차에 태워서 학교에 보내고, 저녁에 차를 타고 데리러 가고…….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빠짐없이 딸내미 대학 공부를 시켰는데, 막상 대학교를 마치고 나니, 일자리 찾기도 어려웠다지요. 지금은 그 ‘좋은 공부 마치고 갈고닦은 좋은 솜씨’를 빛낼 일자리를 찾았는지 모르겠네요. 장영희 님도 고생 참 많았지만, 그래도 대학교수로 아이들을 가르칠 형편이 된 것은 아주 복 받은 일이라고 느낍니다.

<추둘란-콩깍지 사랑>(소나무, 2003)이라는 책이 보입니다. 글쓴이가 낯익은 이름이라 책을 집었는데, 대충 아무 데나 펼쳐서 읽었을 때에는 썩 가슴에 안 와 닿는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끄집어내어 읽고, 다시 꽂아 놓고, 그러기를 몇 번 되풀이한 끝에, 어쨌든 사 놓기로 합니다.

..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며 갖는 꿈은 크지 않습니다. 집으로 오는 갖가지 고지서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고, 읍내에서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를 물어 보지 않고 타는 것입니다. 한 할머니는 노래하는 걸 좋아해 노래방에 가는 게 소원이었다고 하는데, 막상 모시고 갔더니 그 다음엔 가길 꺼렸다고 합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보다도 화면 가득 떠다니는 글자들이 부담스러웠던 것입니다 .. 〈38?39쪽〉

사 놓고 그냥 방 한쪽 구석에 쌓아 놓았던 <콩깍지 사랑>. 문득 무슨 생각이 들어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 보기로 합니다. 이번에 읽어도 마음에 안 와 닿으면 헌책방에 다시 팔자고 생각하면서.

.. 장애 판정 확인서는 병원에서 받습니다. 민서는 염색체 검사를 했기 때문에, 그런 검사처럼 아이의 발육 상태를 이런저런 의료 기구를 써서 판정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습니다. 소아과도, 재활의학과도 아닌 정신과에서, 간단한 설문조사와 의사 선생님의 눈으로 몇 분 만에 결정되었습니다 … 놀랄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 앞에서 우리는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왜 판정을 받으려 하지? 이걸 하면 뭐 이득 되는 것이 있나?”

희끗한 머리칼의 의사 선생님이 맨 처음 한 질문이었습니다. 그 말투는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떤 혜택을 받기 위해 아이를 이용한다는 비아냥이 섞인 것이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장애인으로 등록할수록, 사회를 향하여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고, 또 법의 배려도 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부부는 의사 선생님의 그 말이 내내 가슴에 걸렸습니다 .. 〈52~53쪽〉

<콩깍지 사랑>은 정신없이 사는 사람한테는 속이야기가 보일 수 없는 책이구나 싶습니다. 차분하게, 느긋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가만 둘레를 살펴볼 수 있는 넉넉함으로 읽는 책이구나 싶습니다. 이런 책을 ‘왜 마음에 드는 대목이 안 뜨이지?’ 하면서 조바심을 냈으니, 제대로 속살을 못 보았구나 싶네요. 그래, 책 하나 찾아서 읽는다는 일이 뭔데, 책 하나 찾아서 읽으며 무엇을 하려는데, 책이 내게 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 바보구나, 바보네. 책이름에 적힌 ‘콩깍지’라는 말이 이제서 눈에 들어오네. 콩알만 냠냠 빼먹고 콩깍지는 냅다 아무 데나 버리려고 했나? 책도 알맹이 없는 콩깍지처럼 여기고 이 책 저 책 멋대로 순위를 잡으려 하지 않았나? 미처 몰랐던 책을 뒤늦게 느끼며, 그동안 제대로 몰랐던 사람들 이야기를,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우리들 삶터를 하나둘 되새깁니다.

〈3〉 골목길은 밀려나야 하는가

이제 퍽 배가 고픕니다. 책은 두 권밖에 못 골랐지만, 밥 먹으러 길을 나서야겠습니다. 그런데 길나서기 앞서 사진부터 찍어야겠는데, 무어라 이야기해야 좋을까.

쭈뼛쭈뼛 ‘책방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하고 여쭙니다. 아저씨는 ‘괜찮은데, 어디에 쓰려고 찍느냐?’고 묻습니다. ‘그냥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찍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함께 책 구경을 하던 분이 몇 마디를 거들어 주고, ‘보문’ 아저씨는 ‘가만, 낯익은 얼굴 같은데’ 하면서, 참 오랜만에 찾아온 제 얼굴을 떠올려 내십니다. 쑥스럽게도. 미안하게도. “예전에 책 보내 줘서 고마워. 그 책 지금도 잘 가지고 있어.” 하면서 아저씨가 앉은 자리 한쪽에 꽂아 놓은 책(제가 쓴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고 하는 책)을 끄집어내어 보여줍니다. “(책방은) 내 가게로 꾸려서 달세를 안 내니까 걱정은 없는데, 달세 내는 다른 헌책방이 걱정이 되지. 나야 지금은 손자 과자부스러기 사 주는 재미로 책방을 하지.”

사진만 살그머니 찍고 돌아서려고 했는데, 아저씨는 커피라도 한 잔 해야 한다며, 전화를 걸어 커피배달을 시킵니다. “시키는 김에 나도 한 잔 마시려고.” 하시는데, 그러고 보니, 커피를 혼자 시켜서 마실 수는 없고, 누군가 말동무 될 책손이 있을 때만 커피배달을 시키며 차 대접을 하는 재미를 즐기시겠구나 싶습니다. 이런 커피 대접은 물리칠 수 없어요. 젊은 날, 먼지 잔뜩 쌓인 헌책을 매만지며 푼푼이 모은 돈으로 마련한 책방 한켠에 앉아서, 이제 늙어가는 가운데 느긋함을 즐기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는 보람이잖아요.

“나는 예순이 넘고 일흔이 되어도 앞으로 헌책 장사를 할 생각이야. 다른 사람들은 예순만 넘어도 정년퇴직이다 뭐다 하면서, 앞으로 무얼 할까 걱정이지만, 나는 이렇게 크지는 않더라도 헌책방을 지키면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늘 젊게 살 수 있잖아. 정년퇴직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해 보여. 갑자기 팍삭 늙어 버리는 것 같아.”

‘보문’ 아저씨 이야기는 줄줄줄 이어집니다. 수많은 책을 매만지고 수많은 사람한테 책 끈을 이어온 삶인 만큼, 몇날 며칠 책이야기와 사람이야기와 헌책방이야기를 풀어도 끝이 날 리 없겠지요. 이런 푸근하고 살가운 이야기가 넘치는 청주 헌책방에, 왜 그동안 발걸음을 못했는지. 뭐가 바쁘다고, 뭐가 할 일이 많다고.

고맙게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책방을 나섭니다. 책 구경은 딱 두 권, 가볍게 해서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하면 되고, 청주 시내와 골목길을 다시 거닐어 봅니다. 맛있는 밥집을 찾으러!

고속버스 타고 청주에 들어오던 날, 예전에 그 아름답던 숲길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새로 들어선 휴게방과 모델이 득시글거립디다. 중심거리도 비슷한 형편.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 말고 안쪽 골목길을 걷습니다. 안쪽 골목길은 중심거리나, 버스역 둘레와는 달리 퍽 조용합니다. 다니는 사람 적고 차도 적습니다.

마흔 해나 쉰 해쯤 묵은 듯한 낡은 집이 제법 보입니다. 지금도 사람이 사는 집인지, 사람은 없고 집만 휑뎅그렁 남아 있는지는 모릅니다. 제가 태어난 인천도 이곳 청주처럼 묵은 집이 곳곳에 참 많이 있습니다. 요새는 인천도 거의 모든 동네가 재개발로 밀려나가고 깎여나가고 무너지고 있지만, 아직 적잖은 곳은 일제 강점기 때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고, 50년대 모습, 60년대 모습이 고스란히 있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인천이든 청주든, 또 다른 곳이든 이렇게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고이 남아 있는 곳이 하나둘 사라지는 판입니다. 관광자원이라 한다면, 이렇게 우리들 발자취와 땀방울이 그대로 묻어 있는 집이요 길이요 자연일 텐데, 이런 관광자원은 어느 곳에서나 푸대접을 받거나 밀려나는가 봐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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