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키우는 두 여자 "한국적인 정서 중요"
동심 키우는 두 여자 "한국적인 정서 중요"
  • 북데일리
  • 승인 2006.12.2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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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작 그림책 `딸은 좋다` 펴낸 채인선. 김은정씨

[북데일리] 아동도서, 특히 창작 그림책 시장은 외국 번역물의 독무대나 마찬가지다. 존 버닝햄,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앤서니 브라운 등은 작가 이름만으로 책이 팔리는 흥행보증수표들. 이들의 작품은 철옹성처럼 굳건히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간 역시 나오는 족족 상한가를 친다.

창작 그림책 <딸은 좋다>(한울림어린이. 2006)의 출간이 가뭄 끝 단비마냥, 반가운 건 이 때문이다. 동화작가 채인선(44)과 그림작가 김은정(36)은 국내 작품이 ‘따’를 당하는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 든든한 지원자이자 엄격한 조언자인 서로가 있기에, 가는 길이 외롭진 않다.

베스트셀러 <아름다운 가치사전>(한울림어린이. 2005)에 이어, 또 다시 호흡을 맞춘 콤비를 채인선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아이처럼 꾸밈없는 이들과의 대화는 내내 활기차고, 유쾌했다. 하지만, 번역물에 잠식당한 국내 그림책 시장에 대해 논하는 대목에서는 일순 엄숙했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이 수입된 서구사상에 길들여지는 현실을 성토하며, 가녀린 체구 안에 꿈틀대던 열정을 분출했다.

아이들에게 책은 밥과 같아. 진심 다해 만들어야...

기자 : 국내 그림책 시장은 외국 번역물이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작업하는 작가로서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은정 : 안타까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림책 작업만해서는 돈벌이가 안 되니까 좋은 그림작가들이 전집이라든지 다른 장르로 빠져나가고 있어요. 출판사에서도 국내작품엔 손을 안 대려고 하거든요. 힘을 모아서 경쟁력을 길러야 하는데, 그 기반이 만들어지지 않는 거죠.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채인선)과 제가 ‘우리책 사랑 모임’을 하고 있는 거고요.

채인선 : 단순히 그림책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아이들이 보는 영어사전은 많지만, 국어사전은 없거든요. 단어 학습은 우리말을 배우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단계잖아요? 그런데 이(어린이를 위한 국어사전)에 대한 갈증을 독자가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문제죠.

김은정 : 외국어와 서구사상에 자연스럽게 길들여져서 그렇죠. 의식조차 못할 만큼.

채인선 : 시험 삼아 제가 쓴 책을 영어로 옮겨봤어요. 결말이 완전히 달라지더군요. 영어식으로 사고해서 쓰다보니까, 이야기 전개가 그렇게밖에 안 되는 거에요. 생각해보세요. 주인공이 탄생하면, 우리처럼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겁니다. 그가 사는 곳이 외국이냐, 한국이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지 않겠어요? 바꿔서 생각하면, 우리나라에 들어온 번역물도 원작을 고스란히 살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우리책 사랑 모임’을 하면서 한국그림책을 많이 봐야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외국책은 그것대로 또 봐야죠. 다만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중심을 갖고 있어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저 멍하니 주어진 대로 끌려가면, 그 책이 지닌 미덕도 느낄 수가 없어요.

기자 : 2004년 6월. ‘우리책 사랑 모임’을 발기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어떤 활동을 벌이고 계신지요.

채인선 : 아동문학에서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가장 좋은 일이 책을 읽어주는 겁니다.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그림을 그리죠. 그림책 전시회를 열고요. 아이들이 한국 그림책을 손쉽게 꺼내 볼 수 있도록, 서가에 분리 진열하자는 운동도 합니다.

김은정 : 이번에 <딸을 좋다>를 펴내면서 낭독에 처음으로 참여했어요. 이야기가 궁금했는지, 아이들이 하나 둘 앞으로 모여드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웃음)

채인선 :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을 위한 행사에 어른들이 더 많다는 거에요. 책을 구매하는 주체도 부모고요. 그러다보니 창작하는 사람들이 부모에 의존하기가 쉬워요. 아이들이 고립되고, 어른들이 의도한 쪽으로만 작업이 이루어져요. 악순환이죠. 아이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부족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기자 : 아동도서가 해야 할 몫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채인선 : 아이들에게는 책이 밥과 같습니다. 정신적인 성장을 독서를 통해서 하죠. 아이들은 스스로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고, 직접 밥을 차릴 수도 없으니까 어른들이 대신 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식사를 준비할 때 영양적인 균형을 고려하는 마음이, 책을 만들 때도 그대로 들어가야 해요. 아이들은 눈이 맑아서 거짓은 금방 알아차리거든요. 어른들이 볼 수 없는 것까지 보죠.

김은정: 정말 잘 봐요. 어른들은 무심하게 지나친 숨어있는 그림도, 귀신처럼 찾아내죠. 동물들이 나오는 그림책이 있었어요. 결말이 모든 가축이 마당으로 나와 있는 장면이었는데, 소만 외양간에 그대로 있었죠. 편집자도 몰랐고, 책이 나온 후에도 발견한 어른이 한명도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바로 찾아내서 ‘왜 소만 여기 있어?’ 묻더라고요.

채인선 : 애들 책이라고 쉽게 봐서는 안 돼요. 아동도서에서 전문가는 관심과 배려를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이나 정보는 외부에서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지만, 이러한 정서는 안에서 샘솟는 거거든요.

동심을 위해 뭉친 ‘환상의 콤비’

기자 : <아름다운 가치사전>에 이어 두 번째 공동 작업입니다. 의견조율 등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김은정 : 초점만 잘 맞추면 됩니다. 글을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리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가야할 방향이 분명하기 때문에, 여기서 어긋난 쪽이 맞추면 되는 거죠.

채인선 : 의견이 안 맞고, 생각이 어긋날 때는 이 책을 누가 볼 것인가, 그것만 생각하면 되요. 자신이 참여하는 분야에만 열중하다 보면 중심을 놓칠 수가 있어요. 자기 생각이 맞는 것 같고. 그렇게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김은정 : 정리를 하는 거죠. 포인트가 어디인지. 그러면 다들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와요. 결국 우리가 만드는 책은 작가나 어른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거잖아요. 그것만 숙지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어요.

기자 : 그림책에서 그림과 글 작업이 별도로 진행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두 분처럼 함께 의견을 나누고, 수정하는 건 드문 케이스인데요. 공동 작업에서 시너지효과가 창출되나요.

김은정 : 말할 나위가 없죠. 그림과 글의 관계가 굉장히 탄탄해져요. 둘을 따로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짜임이 견고해지는 겁니다. 이번에 작업하면서,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그림이 잘 안 풀릴 때. 선생님, 편집자와 모여 상의를 했죠. 아이디어를 주고받기도 하고, 그냥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그 와중에 힌트를 얻었어요.

이도 여의치 않은 경우엔, 선생님이 원고를 움직여주셨어요. 완성된 상태에서 글을 수정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다만 같이 이야기하는 중간에, 서로 합일점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수정을 할 여지가 생겼어요.

채인선 : 한번 쓴 원고는 고치기가 힘들어요. 주인공의 인생이 완결된 건데, 잘못 수정하면 전체가 틀어지거든요. 하지만, 서로 소통하다보니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여서 (원고를) 움직인 거죠.

이번에 은정씨랑 작업하면서, 파트너라는 게 뭔지 다시 한 번 느꼈어요.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혼합이 돼야하는데. 다른 부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내 글이 어떻게 그림과 교합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발생하는 우리나라 그림책의 가장 큰 문제가, 글과 그림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에요. 독자들이 외국책을 선호하는 것도 텍스트와 이미지의 밀착관계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다행히, <딸은 좋다>를 보고 사람들이 ‘이 그림엔 이런 글이 낫겠다’ ‘나라면 다른 그림을 그렸을텐데’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파트너십이 거둔 쾌거죠.

기자 : <딸은 좋다>는 준비부터 출간까지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공동 작업이다 보니 더디게 진행된 것인지요.

김은정 :엄밀히 말하면, 7년쯤 걸렸어요. 제가 힐스(HILLS.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에서 공부할 때 선생님께 원고를 처음 받았거든요. 그 때가 99년도였죠. 제 포트폴리오를 보시더니, 이 그림에 맞는 글이 있는데 해보겠냐고 물으시더라고요. 학기 중에 제안을 받는 경우가 드물어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가 뒤늦게 후회했죠. 경험도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라기도 했고. 계속 질질 끌다가, 저 때문에 책이 못 나오니까 죄송하더라고요. 적당한 화가가 있으면, 진행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니까 선생님이 은정씨가 그냥 하라고 하셨어요.

채인선 : 이 원고가 분위기가 독특해서 아무나 다 그릴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은정씨 그림을 보고 이 사람밖에 못하겠다, 이 사람이 해야겠다는 느낌이 왔어요. 그래서 놓지 않은 거죠.

기자 :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로서 서로에 대한 평을 듣고 싶습니다.

채인선 : 은정씨는 생각이 바르고 솔직하고, 생각이 옳아요. 중심이 있어요. 나보다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내가 취약한 부분을 보완을 해줘요. 그림도 성격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책의 완결성을 위해 노력하는 게 저보다 더 해요. 저는 기운이 딸려서 이쯤에서 타협도 하고 싶고 그런데, 은정씨는 끝까지 치밀하게 밀어 붙여요. 파트너로 일하기에 아주 좋죠. 신뢰를 하고 있어요. 제 인생 자체에서도 (웃음)

김은정 : 지금 현재 그림책 작가를 생각한다면, 여러 가지 부분에서 채인선 선생님이 유일하다고 생각해요. 하셔야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죠. 미약하나마 저도 도움이 돼드리고 싶고요.

기자 : 앞으로도 두 분이 함께 작업하실 계획인가요.

김은정 : 동물원에 관한 그림책을 준비 중이에요. 이야기가 재미있는. 제가 그림체가 약간 무거운 편이라, 아무도 가벼운 이야기를 주지 않더라고요. 선생님 역시 그 원고가 제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는데, 한 번 보자고 하고 가로챘어요.(웃음)

기자 : 아동문학 작가로 활동하면서,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채인선 : 일본에 초신타라는 할아버지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어요. 아이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죠. 이 분이 돌아가셨을 때, 일본의 모든 아이들이 막 울었대요. ‘초신타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하느냐...’ 하고. 나도 이러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이상의 무엇을 바랄까 싶어요. 저는 그러기 위해서 지금 사는 거에요. 잘 죽기 위해서...

김은정 : 큰 거에 대해선 생각을 해보진 않았어요. 요즘은 마음이 조급해요. 빨리 한국 그림책이 정착했으면 좋겠고, 그러다 보니 할 일도 태산이고. 4.5년 정도는 계속 바쁜 마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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