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삽화` 카프카의 `변신`은 무죄
`독특한 삽화` 카프카의 `변신`은 무죄
  • 북데일리
  • 승인 2005.08.29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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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소개된 지 반백년이 넘었다. 발표된 시기까지 합친다면 그 수치는 백년을 훌쩍 넘긴다. 국내에서 번역되어 나온 책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카프카의 `변신`은 기존의 번역본과는 완전 차별화된, 제목 그대로 카프카의 `변신`이다. 거의 매번 동반 출간되어오던 작품 `시골의사`도 없이 단독으로 번역되었으며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책의 디자인과 삽화다.

책은 일러스트 디자인 북같은 분위기에 손끝만 살짝 갖다대면 부드럽게 넘어가도록 제작되었다. 글과 함께 곁들여진 삽화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아티스트 루이스 스카파티의 작품.

검은 색으로만 표현된 삽화는 표지부터 시작해 소설의 각 장면 장면을 잔인할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첫 장면의 삽화는 상반신은 사람이지만 하반신은 수십개의 다리가 달려있는 갑충으로 변한 주인공 그레고르의 모습이다.

다음 장으로 넘기면 침대 위에 시커멓고 거대한 한 마리의 갑충이 버둥거리며 누워있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그려져 있는 몸통과 껍질, 촉수와 다리의 모습을 통해 주인공 그레고르가 느끼는 공포와 황당함, 모멸감과 답답함이 흉측스럽게 다가온다.

이어 그레고르의 방문 너머로 벌레의 소리를 짐각한 회사의 지배인이 도망가는 장면, 그의 가족이 경악하는 모습, 여동생 그레테의 바이올린 연주 모습에 감동받아 아예 바이올린으로 변신한 갑충의 묘사 등이 소설적 상상력을 배가시켰다.


마지막으로 처참하게 파출부에 의해 부서져버린 갑충, 그레고르의 모습은 다소의 충격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의 화자가 주인공인 그레고르 자신인데다 완전 갑충으로 변하기 전의 모습이 저자 카프카의 실제 모습과도 흡사해 `카프카 = 그레고르 = 갑충`이라는 오해의 등식이 성립할 정도다.

그동안의 번역본이 글만으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부추겼다면 이번에는 삽화의 힘을 빌림으로써 카프카의 작품세계를 다분히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나의 삶이 한 마리 벌레보다 못한 것인가?`라고. 그리고 재차 의문에 빠진다. 나 자신의 존재감과 지금 내가 처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에 대해서.

한 독자는 "소설에서 그레고르는 잠자는 자신이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돈이나 벌어오는 아들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며 이는 가족만 아니면 때려치울텐데 라는 독백에서 여실히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결국 세상의 부조리를 알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갑충으로 변해버림으로써 자신이 속했던 세상으로부터 추방을 당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영희 교수(서강대 영문과)는 서평을 통해 "변신은 벌레라는 실체를 통해 현대 문명속에서 기능적으로만 평가되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주인공 그레고르가 돈을 버는 동안은 그의 기능과 존재가 인정되지만 그가 벌레로 변한 후 그의 존재 의미와 가치는 상실되었다"고 해석했다.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은 인간 실존의 의미, 자기 정체성의 유지, 자아의 상실과 소외, 고립과 냉대 그리고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인간 관계에 대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어왔다.

카프카의 `변신`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할 것이다. 책의 모습과 번역자와 출판사 그리고 번역에 사용된 단어들이 작게 혹은 크게 카프카가 남긴 빈자리를 채워나갈 것이다. 더불어 주인공이자 화자인 그레고르의 내적 독백에 대한 의미와 해석도 조금씩 변신할 것이다.[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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