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아비 연암 박지원, 고추장 잘담갔다?
홀아비 연암 박지원, 고추장 잘담갔다?
  • 북데일리
  • 승인 2005.08.27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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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괴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연암 박지원이 있다"

연암 박지원 서거 200주년을 맞아 연암의 서간첩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2005. 돌베개)가 출간됐다.

이번에 소개된 서간첩은 기존의 연암집에는 수록되지 않은 내용들로 집을 떠나 목민관으로 일하는 동안 큰 아들과 중존(仲存, 처남 이재성), 그리고 벗에게 보내는 편지를 중심으로 엮어졌다.

시기는 연암이 60세 되던 1796년 정월에 시작돼 이듬해 8월에 끝나고 있다.

편지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자식들에 대한 걱정, 병치레가 잦은 손자에 대한 염려, 시집간 누이에 대한 애정과 걱정, 며느리의 산후 조리에 대한 근심 등이 주를 이룬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의 편지라 다분히 솔직하고 담백하다. 슬프면서도 유머스럽고 꼼꼼하면서 치밀한 말 그대로 복합적인 느낌이 그의 글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제목인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는 편지 글에서 발췌된 부분이다. 연암이 집을 떠나 목민관으로 일하는 와중에 직접 고추장을 담가 집으로 보내면서 밥과 함께 수시로 먹으라고 당부하는 내용이 나온다. 일찌기 처를 여의고 재혼도 하지 않은 채 살아온 연암이 직접 고추장까지 담궈 보내면서 자식들을 챙기는 부분은 부성애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또 처남 이재성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글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거나 사제지간인 박제가와 유득공에게 정조 임금이 요청한 `이방익전`의 초고를 부탁하는 부분은 연암이 글을 준비할 때의 습관을 드러낸다. 한 번 붓을 잡으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문호의 기질을 짐작할 수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벗에게 보낸 편지에는 인간적인 유머도 듬뿍 담겨있다.

"밤비가 채찍으로 내리치는 것처럼 후드득 집을 흔들어 대는 바람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사외다. 수많은 이들이 들끓어서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며 발광할 뻔했거늘 그대는 이런 우환을 면했는지? 편지를 보내며 한 번 웃사외다"

"박제가의 집에 있는, 우리나라에 들여온 요즘 중국인의 시필(詩筆)을 만일 빌려볼 수만 있다면 이 며칠 사이의 불안정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겠건만 그 사람이 무상무도(無狀無道)하니 지극히 귀한 것을 잠시라도 손에서 내놓겠느냐?"에서는 연암이 제자 박제가의 문예적 재능은 인정했지만 인품은 좋게 보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외에 "학질이 낫는다 싶더니 이제는 치질이 사람을 못견디게 하는 구나"는 자신의 건강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비록 돈받는 일은 강제로 물렸을 되 쌀값이 흙값이라 기둥에 부딪쳐 울 것만 같구나"라는 부분에서 목민관으로서 백성들을 아끼는 심성이 드러난다.

"시험에 붙고 안 붙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장에 들어올 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거라"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큰 아들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나타낸다.

"책을 얻었으되 착실히 궁구하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나 후추를 통째로 삼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라는 부분은 아들의 면학에 대한 꾸지람과 함께 연암 특유의 익살이 두드러진다.

연암 박지원하면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이자 `열하일기`와 `양반전`, `허생전` 등으로 유명하다. 이미 여러 작품 속에서 연암 특유의 해학과 재치 그리고 호방함이 드러났지만 그가 직접 그의 가족과 벗에게 보낸 서간첩을 통해 그의 인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편지 번역문이 끝난 뒤 편지 원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옛 정취가 물신 풍기는 누런색 서간첩이 연암 특유의 멋과 풍취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림 = 손자 박주수가 그린 연암의 초상)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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