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佛 여성작가 아멜리 노통의 건강법
발칙한 佛 여성작가 아멜리 노통의 건강법
  • 북데일리
  • 승인 2005.08.2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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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의 소파에서 볼펜으로 쓴 그녀의 소설들은 발칙하다. 그녀가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재미있고 유쾌하다. 그녀의 서랍엔 아직 발표하지 않은 50여 편의 원고가 있다. 그 중의 3분의 1 정도는 출간을 준비중이다.

그녀는 196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외교관이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미국,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녀는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벨기에 작가다. 25세에 발표한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문학세계사, 2004)은 10만권이 팔리며 천재 탄생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해마다 가을이면 한편씩 작품을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1999년 `두려움과 떨림`(열린책들, 2002)로 받은 프랑세즈 소설 대상 등 각종 상도 수상했다.

아름답지 말거나, 야멸차거나

그녀는 참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렇지만 그녀는 사람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그다지 따뜻하거나 고분고분하지 않다. 그녀는 입담이 세다. 독설적이고 아이러니하고 현학적이며 지적 수사가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야멸차고 잔인하고 냉담하다.

그녀는 발칙하다. 다섯 살 때부터 입에 술을 댔다는 전력처럼 마치 주정꾼처럼 재미있는 상황으로 몰고 가길 좋아한다. `살인자의 화장법`에서는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를 곤경으로 몰아넣고 끝내 죽음으로 유도하며 숨통을 조인다. 위대한 작가가 젊은 여성 기자에 의해 생의 비밀을 추궁 당하는 과정은 섬뜩하면서 아슬아슬하다. `적의 화장법`(문학세계사, 2001)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말의 전쟁터다. 고대의 폼페이 화산 폭발은 미래에서 계획된 범죄로 확인된다. 역사와 시간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토론, 대사는 시종일관, 상상력이 부족한 독자를 괴롭히기 위한 트릭으로 가득차다.

그녀는 비트겐슈타인에서 보들레르, 호치민, 레닌 등 방대한 독서로 단련되었다. 그만큼 그녀는 글을 쓴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 환상과 상상력, 독자와 독서의 관계 등에 대해 능수능란하다. 그녀는 끈질기고 한치의 양보도 없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줄줄 꿰며 작품 속에서 줄거리 뒤집기를 계속한다. 한 소설에 모든 장르를 뒤섞어놓고 싶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그녀는 재미있다. 읽는 재미로 치면 잘 나가는 한국작가인 성석제나 김영하 급이다. 열아홉에 결혼, 임신한 어머니가 뱃속의 아기가 딸꾹질을 해대자 남편을 권총으로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로베르 인명사전`(문학세계사, 2003)에서는 살인과 에로티즘의 문제가 특유의 간결. 경쾌한 필치로 다루어진다. 그녀의 소설엔 가학과 피학과 악의와 잔혹함이 단골로 뒤섞이며 독자들에게 최면술을 건다.

그녀는 대화를 좋아한다. 언어유희에 가까운 기이하고 엽기적인 대화들은 칸트나 후설 등 철학적 인용으로 넘쳐난다. 철저히 조직된 거짓말 속에서 읽는 즐거움의 맛이 배가되는 것이다. 가령 `적의 화장법`이나 `시간의 옷`(열린책들, 2003)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로만 구성된다. `적의 화장법`은 공항대합실에서 낯선 타인과 나누는 짓궂은 철학콩트다. `시간의 옷`에서는 화산폭발을 놓고 의문을 제기한 작가와 계획을 실행한 장본인이라는 2579년 26세기의 과학자가 등장한다.

성실한 독자라면 이런 그녀의 상상에 동참하며 한결 사색적이 된다. 고급스런 즐거움을 만끽한다. 호기심과 열정 사이에서 책읽는 매력을 푹 빠질 수 있다. 침을 꼬리 끝에 달고 붕붕거리는 왕벌에게 혼절한 준비를 하고 몸을 맡기는 것이다.

문제는 수다스럽고 장식적인 것에 그다지 재미를 못 느낄 경우다. 그녀의 숨결과 언어사용법을 따라잡지 못하면 쉬 지친다는 것. 그녀의 발칙한 패턴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재미있는 트릭에는 눈길이 가지만, 그것이 끝내 말장난이라고 느낄 법도 하다. 지적 유희에서 탈락한 `지는 게임`에 참가한 독자들은 정이 떨어질 법도 하다.

한국에서 태풍이 되지 못한 `노통 신드롬`의 비밀

아멜리 노통의 명민하고 새로운 글쓰기는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지만 그만큼 그녀에게 다가섰던 독자들과 순식간에 등지게 할 양날의 칼이다.

한국에서 `노통 신드롬`은 일어날 듯하다가 수그러들곤 했다. 새로운 독자들은 늘 찾아오는데 충성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것. 한국 독자들의 취향은 아직도 지적 유희보다는 드라마가 우세한 탓일까. 한국 독자들은 무엇보다 머릿속으로 다음 장면을 짐작하고 상상하며, 화젯거리로 삼는 안방극장의 `겨울연가`류에 더 환호한다. 그래서 드라마의 위세가 다수고 지적 유희는 동떨어진 소수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을 공략하는 법이 그다지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칠조어론`의 박상륭이 선보였던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나 이문구의 입심들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인내심은 넘치고도 남는다. 물론 여기에도 장애물이 있다. 그녀의 소설은 지나칠 정도로 축적된 교양을 요구한다. 교양보다는 감성, 시대적인 맥락보다는 눈앞의 사건에 관심이 많은 한국의 `클릭 신세대`--그 점에 관해서라면 구세대도 그다지 다를 것은 없지만--와의 정서적인 공감이 쉽지 않은 것이다. 대화보다는 댓글문화인 둘 사이의 기호는 불협화음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한국에서는 차라리 하루키 스타일이 제격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소비적 상징들-비틀즈나 재즈바, `쥐`로 상징되는 독립적인 소비주체-즉 철저히 고립적이며 소비지향적인 개인주의와 미문(美文)이 더 한국적인 정서와 구미가 맞는 것이다.

한국의 청춘 혹은 386세대에게 멍울처럼 남아있는 독재의 유산들은 다분히 하루키적이다. 하루키는 일본의 좌우익 대결장인 전공투 세대임을 추억한다. 동시에 그 결별의 과정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개인주의로의 전향은 부드럽고도 달콤하다. `고독교(孤獨敎)의 신자`처럼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패턴의 반복.

어느 날 문득 발견한 너무나 발전해버린 초고속 성장은 한국에서도 비슷하다. 더욱이 갑자기 찾아온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허탈감과 좌절을 맛보게 한다. 이제 전체를 강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더 이상 사회체제는 비판대상이 아니고 저만치 꼬리치며 물러나 있다. 새 세대의 관심은 오직 몸이거나 감각이다.

이에 비하면 그녀의 도발은 타고난 반 순응적 반체제적 기질이다. 체제의 경직성에 대한 반항정신이 가차없다. 그녀가 시도하는 것은 철학적인, 언어적인 유희를 통해 자뭇 심각하게 진행되며 스릴을 느끼는 대화들이다.

그녀의 소통방식이 드라마보다는 대화인 이유는 그녀가 지극히 문명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글쓰기나 예술, 성에 대해 철학적인 문제의식으로 소설 속에서의 치열하게 도발하고 피 터지게 싸운다. 아름답지 말거나 야멸차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녀가 입으면 패션까지도 유행한다는 `노통 신드롬`의 실체는 바로 문명 속 인간에 대한 그녀의 관심이 잔인하고 섬뜩하고 야멸차기 때문에 빚어지는 후련함이다.

한국 독자들은 불협화음 속에서도 그녀를 조금씩 이해해 가는 듯하다. `노통표` 소설에 환호하는 이가 하나 둘 늘어나고, 그녀처럼 이제 좀 더 삐딱하게 인간 존재에 대해, 예술적인 본질에 시비 걸고 싶어하는 듯하다.

하루 평균 3시간을 글쓰기에 바치고, 글쓰기를 `하루 일정량을 마시는 마약`이라고 말하는 작가. 아직 책표지에 있는 그녀의 예쁜 얼굴과 프랑스에서의 찬사만으로 책을 사든 독자들이 많다. 하지만 그녀의 기질과 대화방식을 `그녀의 건강법`으로 확실히 자각한 후라면 그들은 저절로 `노통 마니아`로 변해 있을 것이다.[북데일리 박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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