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많은 휴머니스트의 모로코 기행
호기심 많은 휴머니스트의 모로코 기행
  • 북데일리
  • 승인 2006.12.1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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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잉그리드(Ingrid)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알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결혼해서 딸을 낳으면 잉그리드라고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생각했단다. 꿈처럼 정말 예쁜(?) 딸을 낳았고 잉그리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잉그리드 버그만을 전혀 닮지 않았다. 아버지가 영화 ‘카사블랑카’를 보지만 않았더라도 그녀에게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는 이름이 붙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야기를 되돌려 ‘카사블랑카’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카사블랑카’는 카사블랑카라는 도시의 한 술집을 배경으로 잉그리드 버그만과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라는 나라에 위치한 한 도시의 이름이다. 최근 모로코에 관심을 갖게 해준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한 권은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문학세계. 2000). 이 책을 읽으면서 북아프리카의 지중해에 면하고 있는 나라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조금은 낯선 White Africa에 대해 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른 한 권은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민음사. 2006). 북아프리카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이책은 1954년에 출간된 여행기다. 지리나 관광보다는 오로지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 엘리아스 카네티가 49세 때 모로코의 마라케시란 도시에 영화촬영을 간 친구와 동행하여 방문한 동안에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76세 때인 198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군중과 권력>이다. 그의 작품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스페인계 유태인으로 불가리아에서 1905년 태어났고, 영국에서 주로 생활했고 주로 영어와 스페인어를 사용했으나 작품 활동은 독일어로 썼다고 한다. 이 책 역시 독일어로 썼다.

호기심 많은 저자에게 주의를 끄는 인물들은 걸인, 장님, 미군부대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실업자, 시장 상인, 음식점과 술집 주인 등 다양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공통점은 너무나 불행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낯선 모로코의 한 도시에서 주로 어두운 면만 살펴보고 있으며, 그들의 불행에 가슴아파하는 휴머니스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 시대에 모로코는 건강한 면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1954년의 모로코는 프랑스에서 독립하기 2년 전인 시점이니 만큼 피식민지의 풍경이 당연히 어두울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저자는 불쌍한 동물에 대한 애처로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의 눈에 보이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낙타의 모습과 나귀의 불쌍한 모습은 보는 이마저 애처로운 감정을 들게 한다. 동물이 사랑받지 못하는 곳은 사람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하던가! 아니면 사람의 존엄성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곳에서는 동물들도 거칠게 다뤄진다고 하던가! 아무튼 1954년의 모로코의 모습은 인간도 동물의 모습도 그러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관능적인 여인에게 눈을 돌리는 저자의 모습에서 40대 남자가 가진 속성은 동서가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 슬며시 웃음이 났다.

책에는 많은 사진들이 들어있다. 전문적인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으로 보이는 사진들은 언제 찍은 것인지가 매우 궁금했다. 사진의 전체적인 톤이 어두운 탓에 모로코의 상황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다.

오랜 식민지시기를 보냈고 아랍의 문화와 유럽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모로코는 지금도 어려운 생활을 하지 않을까 짐작 된다. 모로코는 유럽과 가장 가까운 물길인 지브롤터 해협을 밀항해서 유럽으로 가려는 아프리카인들이 경유하는 지역이다. 지금도 많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유럽은 꿈을 이룰 수 있는 지역으로 모로코는 제3세계의 지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땅을 밟아 볼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에는 모로코의 밝은 모습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영화 ‘카사블랑카’를 떠올리며 모로코를 유유히 거닐 그날을 기다리며.

[이동환 시민기자 eehw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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