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신경림 시인
[처음처럼] 신경림 시인
  • 북데일리
  • 승인 2006.12.05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앤솔러지 `처음처럼` 펴낸 시인 신경림

[북데일리] 초로의 노인이 아이의 눈을 지녔다. 모진 풍파 속에 탁해져도 한참을 탁해졌을 법한 눈망울이,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마냥 영롱하게 빛난다. 왜일까, 그 오랜 궁금증을 시인 신경림(70)을 만나고서야 드디어 풀었다.

시인은 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져 큰일이라고 했다. 며칠 전 그는 홀로 극장을 찾아가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다가, 눈물이 쏟아져 `혼쭐`이 났다. 1930년대 사회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 <경성 트로이카>(사회평론. 2004)를 읽다가도, 울음이 솟구쳤단다.

긴 세월 지녀온 시름과 회한을 눈물에 씻겨 보냈으니, 남은 건 어릴 적 순수함일 수밖에. "다 큰 어른이 울기나 하고, 주책이지" 얼굴 붉히는 신경림의 눈 역시, 아이의 그것과 꼭 닮아 있었다.

"난해함이 독자와 시의 거리 멀게해..."

동심을 찾은 시인은, 시에서도 본연의 순수성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최근 펴낸 앤솔러지 <처음처럼>(다산책방. 2006)은 그 의지의 결과물. "시란 본디, 눈보다는 입으로 읽어야 제대로 맛이 나는 문학"이기에, 그가 평소 애송하던 시 50편을 엮었다.

"사람들이 요즘 좀처럼 시를 읽지 않는데 그게 읽는 맛, 읽는 즐거움을 잃어버려서 그래요. 시는 눈, 입, 귀, 3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져야 되는 거거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쉽고 재미있는 시, 암송하기 좋은 시가 정말 좋은 시죠."

그는 요즘 시인들이 뜻을 알 수 없는 난해함으로 독자와 시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고 있다며, 고개 숙여 반성해야 한다는 `따끔한` 일침을 덧붙였다.

1955년 `문학예술`에 `갈대` `묘비` 등이 추천돼 문단에 입적한지도 어언 50년. 반세기를 시작(詩作)에 투신한 신경림은, `현대시의 산증인` 답게 시가 걸어온 역사를 <처음처럼>을 통해 되살려내고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그린 시부터, 7.80년대를 관통한 저항의식이 담긴 시, 개인의 감수성을 섬세하게 포착한 시까지. 시인은 어떠한 구분 없이 오로지 작품만으로 시를 해설했다.

"시는 독자에게 읽혀지는 순간, 작가의 품을 떠나 읽은 이의 것이 된다."

시인의 지론이다. 그는 최근 <나의 고전읽기>(북섬. 2006)에서 시인 정지용을 평가하며, 친일 시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차별적인 단죄 풍토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친일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작품이, 시인이 벌인 행위와 싸잡아 매도되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를 향한 열정 하나로 살아온 신경림은 작품이 외면당하는 일이, 자식이 상처 입는 것 마냥 안쓰러운 모양이다.

"시인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

우리시대의 `큰 작가` 조정래는 시를 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시인 부인을 `떠받들고` 산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도대체 시가 무엇이기에, 20년 동안 써내려간 원고지만 5만장이 넘는다는 그조차도 풀 수 없는 난제인 걸까.

발표작만 900여 편인 우리시대의 `큰 시인` 신경림은 "시인은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만지지 못하는 것을 만질 줄 알아야 시인이란다. 이를 확실하고 힘 있게 전달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니, 보통 사람은 꿈조차도 못 꾸겠다.

그래서 시인은 독자를 대변해야 한다. 과거, 사회 문제에 대해 방관하는 건 시인의 직무를 유기하는 일이었다. 신경림이 7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시 `농무`를 통해, 당대 농촌 현실을 꾸밈없이 드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현대는 개인적인 문제가 더욱 우세. 이제 시는 개인과 사회를 조화롭게 다루어야 한단다.

"시인은 결국 시로 이야기해야 돼요. 사회를 향한 목소리도 개인에 대한 관심도 전부 시로 말해야지. 자기를 직접 드러내선 안 되는 사람이야. 시인은..."

시대는 바뀌었지만, 시인은 그대로다. 중도노선 지식인 모임을 표방하는 `화해상상마당`, 남북 작가들만의 단일 조직 `민족문학인협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당신이 시를 통해서 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실천하고 있으니 같이 하자`는 권유를 받고 참여했을 뿐. 신경림은 여전히 시로써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리라고 다짐한다.

그가 애정을 쏟는 단체는, 지역주민 문화운동 모임인 `더불어 숲`과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만해마을`. 둘 모두 독자와 문학을 가깝게 하는 행사에 힘을 쏟기 때문이다.

일흔을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경림의 시에 대한 `타는 목마름`은 해소되지 않은 듯하다. 인터뷰 말미, 그는 "죽기 전에 꼭 써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을 위한 동시나 동요를 집필하고픈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단다.

시는 억지로 짜내서는 안 되기에, 시인은 동시가 써질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쓰고자 마음먹은 순간부터 입에 술을 대지도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다니, 그가 두문분출 하는 날이 오면 분명 신작 준비에 들어간 것이라 짐작해도 좋을 듯하다.

[북데일리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