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원작가 김탁환 "시대 뛰어넘는 인물 동경"
`황진이` 원작가 김탁환 "시대 뛰어넘는 인물 동경"
  • 북데일리
  • 승인 2006.11.3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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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인터뷰]우리시대 이야기 꾼 소설가 김탁환

<허균, 최후의 19일>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서러워라, 잊혀 진 다는 것> <방각본 살인사건> <리심>...

소설가 김탁환(38)의 필모그래피는 ‘다복’하다. TV 드라마로 만들어진 <불멸의 이순신> 방영중인 <나, 황진이> 영화 제작 중에 있는 <방각본 살인사건> 이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영화화 될 예정이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김탁환의 이야기에 영상매체가 열광하는 이유는 견고한 스토리텔링과 인물의 비극성에 기인한다. 치밀한 사전조사와 취재과정을 통해 직조되는 그의 인물들은 억압된 운명에 저항하는 투사다. 이순신, 황진이, 리심 모두가 ‘쉽게’ 제 운명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비극의 종말에 처한 인물들이다. 그들의 폭풍 같은 삶이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질 때 대중은 거침없이 ‘매혹’ 당한다.

나이 마흔도 되기 전에 30편이 넘는 이야기를 써낸 무서운 이야기 꾼 김탁환. 그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만났다.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영화를 보며 강의와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취재과정을 통해 얻은 수북한 자료들, 가열 차게 읽어 온 수백 권의 소설 사이에서 그는 <나, 황진이>를 펴들며 “백무는 정말 처절하게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가리키는 그림 속에 초라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백무가 있었다. 집필은 끝났지만, 황진이의 분노와 슬픔은 여전히 그 안에 잔재했다.

- ‘황진이’는 보시나요? 원작자로 보는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요.

“드라마는 절반 쯤 봤습니다. 내가 쓴 것과 많이 다르구나 그런 생각을 하죠. 나름대로 아쉬운 점도 있고..”

- 특히 어떤 점이 그런가요.

“드라마는 웰메이드죠. 그런데도 아쉬움이 보여요. 박연폭포 장면에서는 정말 개성에 가서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거죠. 사실 핵문제만 없었으면 갈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어요. 조선텍스트를 배경으로 개성부분을 복원한 부분이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될까 스스로는 그런 게 궁금했어요”

-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방각본 살인사건> 많은 작품들이 드라마, 영화화 되고 있습니다. 이런 러브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개인적으로 절반은 문학인 같고 절반은 영화인 같아요. 소설과 시나리오 집필을 병행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두 가지는 같이 갖고 나갈 생각입니다. 활자매체, 영상매체 모두에 끌리는 것 같아요”

-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나요.

“장르가 뭔지는 몰랐지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시도 써보고 소설도 써보고 고전문학도 공부했는데 읽고 쓰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국문과를 갔어요. 본격적으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건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내려가서 습작하면서 부터였어요. 이야기꾼이 나한테 가장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귀자 씨의 <원미동 사람들>은 소설가로서의 꿈을 갖게 해준 책이기도 하고요”

- 평론 활동도 하셨지만 결국 소설가가 되셨습니다. 남의 작품을 비평하는 일보다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겠죠.

“그렇죠. 이야기란 결국, 삶에 대한 거니까요. 보통사람들은 자기 인생밖에 못살잖아요. 그런데 이야기를 쓰게 되면 다른 삶을 여러 번 살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인 것 같아요. 또 내가 갖고 있는 어떤 육체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지독한 경험론자’ 에요.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내가 체험해 보기 전까지는 잘 안 믿죠. 내가 쓰고, 경험하고, 기록하고, 공부하면서 ‘체험’ 한 후에야 깨닫고 믿어요. 글 쓰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전에 겪는 과정들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배우들이 어떤 역할을 맡아 몰입 하는 것과 비슷하기도 한 것 같아요”

- 집필 전에 반드시 취재과정을 거친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신작 <리심>에서도 그런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결과물은 책으로 나오지만 저한테 중요한 것은 그 전 과정이에요. 매끈한 텍스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죠. 한 작품이 끝나면 집필을 위해 산 책, 만들어 놓은 이야기들이 수북이 쌓이죠. 지금까지 모은 게 라면박스로 수십 개인데 내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가 되면 그걸 꺼내 봐요.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내가 어떤 필요에 의해 어떻게 모았나를 되돌아보는 게 재밌죠”

-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리심> 모두 불운한 운명에 저항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신작 <리심>은 그런 스스로의 성향을 가장 사실적으로 구체화 시킨 작품으로 보입니다.

“저는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물을 좋아합니다. 절벽의 끝에 자신을 내 던질 수 있는 그런 인물. 리심에 대한 짧은 글을 처음 읽었을 때 강하게 끌렀어요. 이 여자는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 그런 삶을 살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외국 사람과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언제나 혼자였을 것이다. 파리에서도, 일본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스스로가 멈추면 그냥 거기서 삶이 끝나는 그런 여자죠. 하염없이 외로이 걷다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그렇지만 계속 갈 수 밖에 없는.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죠. 궁중무희는 억압이 많은 신분이었는데 그걸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던 여자에요. 억압이나 한계를 계속 뚫고 나가려고 했지만, 그걸 더 이상 뚫고 나가지 못했을 때 자살하죠. 영화에 비유한다면 대부의 알파치노 같은 인물이에요. 자신의 명예,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살았지만 결국은 쓸쓸히 혼자 죽는. 더 이상 비상 할 수 없는 삶, 운명의 소용돌이의 끝에서 장엄하게 추락하는 그런 인물에 스스로 끌리는 것 같아요. 허균, 이순신, 황진이가 다 그랬죠. 그들을 따라 가다보면 그 시대에 그려볼 수 있는 가장 큰 원을 그려볼 수 있어요. 작가마다 비극에 끌리는 사람이 있고 희극에 끌리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전자인 것 같아요”

- <나, 황진이>나 <리심> 모두 여성이 주인공인데 여성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어렵지는 않나요.

“<나, 황진이>를 쓰면서 여자들이 생각하는 여자는 무얼까라는 문제로 많이 고민했어요. 학생들에게 글을 읽히고 ‘남자가 쓴 것 같냐 여자가 쓴 것 같냐’고 물었더니 다들 ‘선생님이 쓴 것 같아요’ 이러는 거예요. 단번에 들킨 거죠. 여성들의 심리를 나름대로 파악했다고 쓴 부분에 다 빨간 줄이 쳐 있었어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이끌려 쓴 부분이 지적을 오히려 안 당했더라고요. 작정하고 다시 썼죠. 그리고 다시 읽혔더니 ‘여자가 쓴 거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나, 황진이> 쓰는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느꼈어요. <리심>은 인물의 심리를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여행기 부분에서 3인칭에서 1인칭으로 바뀌는 시도를 했죠. 출판사에서는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싫어했지만 1인칭이 중요했어요. 내가 리심이 돼야 했기 때문이죠. 절실하게 인물의 심정을 담아야 했고 그래서 1인칭 쓰기를 택했죠”

- 발표 하시는 작품마다 그 분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불멸의 이순신> 같은 경우 10년이 걸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장기간의 집필이 요하는 정신적, 육체적 노동이 힘들지는 않으신지요.

“처음부터 단행본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계간지 작가를 경멸 할 정도로 싫어했죠. 소설가가 되기 전에 비평 활동을 했는데 그때 보니까 아무리 좋은 작가라도 등단 후 몇 년 지나면 다 사라지더라고요. 원고청탁에 매달려 3개월에 한 번씩 글을 쓰면 2년이면 완전히 소진되는 거죠. 그렇게 하면 비평가들의 평은 받을 수 있겠지만 작가는 비평가를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길을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독자들과 함께 늙어가는 작가가 되는 게 제 꿈이에요. 박경리 선생님께서 ‘작가에겐 두루마리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절대적으로 공감해요. 작가라면 한번 시작하면 두루마리처럼 쉼 없이 글을 써내는 힘이 있어야 한고 생각하고 그런 두루마리를 확보 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단편 시스템에 끌려가지 않는, 큰 걸음을 뚜벅뚜벅 걷는 작가”

- 여러 장르 중에 역사 소설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앞으로 다양한 장르를 쓸 계획이기 때문에 꼭 역사소설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왕 시작한 거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죠. ‘역사소설’이라는 장르로 규정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것들을 추구해왔어요. <방각본 살인사건>은 추리, <나, 황진이>는 고백 <리심>은 여행 <불멸의 이순신>은 연의류라고 할 수 있죠. 각각의 사건과 인물에 따라 장르를 부여해요. 궁극적으로는 모든 장르를 다 아우르는 퓨전장르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소설이 ‘팩션’으로 불리고 있고 큰 인기를 끌 고 있습니다.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이러한 경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많은 분들이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묻는데. 사실 모든 것이 소설이고 모든 것이 허구죠. 경계는 없어요. 예를 들어 리심이 일본에 살았다는 설정이 있다면, 날짜는 나오지만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았다는 것은 모두 제가 만들어 낸 거거든요. 최대한 풍속에 어긋나지 않게 쓰려고 노력하지만 그것 때문에 상상력에 제한을 받고 싶지는 않아요”

- 집필 중인 작품이 있나요

“K1 유도선수 추성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한일합작 영화 시나리오에요. 제일동포 4세 유도선수로 20대에 부산시청에 입단을 했는데 무척 잘했는데도 텃세가 심해서 우리나라에서 국가대표가 못됐죠. 결국 2001년에 일본 국가대표가 됐어요. 지난여름에 가서 만났는데 스스로 코스모폴리탄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왜 K1에 갔냐고 했더니 국적을 묻지 않아서 그랬다고 했는데 그 말이 가슴에 남았어요.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그릴 계획입니다”

(사진 = 고아라 기자)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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