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파문을 일으킨 철학책
내 삶에 파문을 일으킨 철학책
  • 북데일리
  • 승인 2006.11.2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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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사람마다 약간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수긍하는 말 중에 하나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다. 유홍준씨가 쓴 <나의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중앙M&B. 2001)라는 책에 있던 말이었다.

당시 안내를 해주던 북한 실무진에게 유홍준씨가 왜 저 먼 구석기 시대에 떨어진 돌 조각을 박물관에서 보아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설명을 해주던 부분에서 확실하게 내가 인정한 부분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느끼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철학,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도무지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 그 이야기가 내 일상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소피의 세계>(현암사. 1996)라는 한권의 책 때문이었다. 이 책으로 철학이라는 나에게는 얼토당토않은 분야에 발끝이라도 적셔보고 나서 이렇게 재미난 철학책은 처음이다. 그야말로 당장 친구를 붙잡고 이 책에 나온 이야기를 했을 만큼 이 책은 아는 것의 기쁨과 생각하는 것의 기쁨을 알게 하는 그런 책이다. 철학이 고리타분한 먼지를 탈탈 털게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아닌 내 삶에 어느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은 이 책이 알려주는 사고의 기쁨이다.

이 책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효형. 2005)에 나오는 영화는 상당히 대중적인 작품들로 선정이 되어있다. 아무리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어도 적어도 80% 이상은 거의 한번쯤은 봤거나 적어도 들어는 봤을 그런 흔하디흔한 영화이다. 지금도 2천 원짜리 혹은 천 원짜리 영화 잡지 어딘가를 뒤져보면 이 책에 나온 영화 이야기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는 것이 맞는 것이다. 누군가를 영화를 보고 <여인의 향기>를 보고 조명이 켜지는 순간 알파치노의 춤이 정말 예술이었다는 사실만을 기억하지만 누군가는 인간 사이에 언어의 의미를 열심히 곱씹고 있는 것이다. 질근질근.

난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을 신봉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물론 극단적인 배고픔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나를 째려볼지 모르지만 난 `인간이 태어난 이상 인간으로써 살아가는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사람들을 만나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간다. 결국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고 있던 작은 2시간짜리 영화 한편에 얼마나 많은 인간의 고민이 응집되어 있느냐 이다. 결국 철학이란 우리내의 삶의 응집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말이다.

「프롬의 분석에 따르면 문명사의 흐름을 두고 볼 때 화폐와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존재지향에서 소유지향으로 바뀌어갔다. 특히 화폐경제 제도의 확산은 이러한 경향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 도시의 모든 주택도 마음만 먹으면 이제 한 장의 종이(수표)로써 소유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소유양식이 보편화되면서 이제 한 인간의 가치도 그가 지니고 있는 소유물의 양으로써 측정되기 시작했다. `그가 누구냐?`는 물음은 `그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는 물음을 뜻하게 되었다.

프롬은 이 위험스러운 징후들이 심지어 일상에서도 반영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령 영어로 `내 아내는 아름답다`고 말하는 통상적인 표현은 `My wife is beautiful`이 아니라 `I have a beautiful wife`이다. `이가 아프다`는 `My tooth is painful`이 아니라 `I have a toothache`이다. 프롬은 이처럼 `be+주격 보어`의 2형식 문장들이 점점 `have +목적어`의 3형식 문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이 바로 존재지향의 태도가 점점 더 소유지향의 태도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상적인 증거라 말한다.」

철학의 본래 의미는 `지혜를 사랑한다`라고 하지만 이 시대에 이런 철학의 의미는 사장된 지 오래가 아닐까.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철학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삶에 너무나 진한 어둠의 그림자만을 드리우고 있는 것처럼 그리 사람들은 생각한다. 너무나 무거워서 추스를 수 없을 정도로 그리 무거운 것이 철학이라고 사람들은 그리 생각한다.

이 책이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가는 것은 바로 이 점을 새롭게 정의했기 때문이다. 한없이 어렵고 한없이 먼지를 털어내야 읽을 수 있는 그 어느 시대 철학자의 이야기를 지금 우리의 삶으로 열심히 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철학이란 일상에 들어오지 않으면 망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저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혹시 아는가 이 책을 읽고 누군가는 에리히 프롬의 책을 뒤질지도 모르고, 칸트를 읽어보려 바동거릴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려 할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이 책의 의미는 충분 그 이상이리라.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철학, 내 삶에 파문을 일으키다.

당신의 삶에도 이 책이 파문을 일으키기를 바란다.

[북데일리 이경미 시민기자] likedream@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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