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왜 하필 페루에서 죽을까
새들은 왜 하필 페루에서 죽을까
  • 북데일리
  • 승인 2006.11.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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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공쿠르 상을 두 차례 수상한 작가, 로맹 가리. 그는 1956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후에,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해 또 한 번 공쿠르 상을 수상하며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는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980년 파리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유태계 프랑스인으로 살았으며, 젊음의 한가운데를 나치의 핍박 아래서 보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문학동네. 2001)는 표제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포함해 16편의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16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인간에 대한 깊은 고뇌와 의문들을 품고 있다. 한편 한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텍스트를 읽는 시간보다는 읽고 난 후의 긴 여운 때문에 쉽게 다음 이야기로 나아갈 수 없게끔 만들었다.

로맹 가리는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은 작가이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 그는 새들이 왜 페루에 가서 죽는지, 낯선 여인-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이 왜 그곳까지 와서 죽으려 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류트’에서 백작의 부인이 왜 갑자기 류트를 꺼내서 연주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방향을 제시해 주거나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 생각해 내게끔 단순히 이야기를 던져줄 뿐이다. 그래서 독자는 행간에 숨어있는 것을 읽어내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로맹 가리는 독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작가이다.

천박한 물질주의와 비열한 상업주의에 대한 공포, 인간이 내세를 갖는 데 필요한 무욕과 순수를 찾아 문명과는 거리가 먼 섬으로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나치의 핍박을 피해 친구에게 전 재산을 양도하고 지하에 숨어 지내는 유태인의 이야기를 그린 ‘어떤 휴머니스트’,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자살 이야기를 담고 있는 ‘벽-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등에서 처럼, 그는 마지막 부분에서 독자들이 전혀 생각지도 않은 장면을 이끌어 내면서 결론을 짓는다. 덕분에 독자들은 놀라운 반전과 역설에 한참을 멍해 있을 수밖에 없다.

친절하지도 않을 뿐더러 독자의 뒤통수까지 때리는 작가 로맹 가리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에 대해서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에는 자신을 고문했던 나치 친위대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희생자 유태인이 등장한다. 유태인의 친구가 이유를 묻자, 그 유태인은 "그(학살자)가 다음번에는 잘해준다고 약속했다네"하며 인간성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표현한다.

‘어떤 휴머니스트’에서 유태인인 주인공은 친구가 배신을 했다는 사실 조차 모른 채, 친구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과 감사로 행복하게 죽어간다.

전쟁과 나치의 학살을 경험한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러한 시대상을 그리며 인간에 대한 부정과 잔인함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새처럼 나약하고 날개가 꺾인 인간들에게는 언젠가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낙관주의와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은 10살짜리 꼬마 모모의 눈을 통해 인간을 그리며,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버리지 않는다. <자기 앞의 생>은 기존의 로맹 가리가 발표한 작품과 너무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라서 어느 누구도 동일인물이 쓴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 작품에서도 이미 품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록 자신은 인류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곧 치유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눈길로 인간을 탐구하고 그린 그의 열정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 책속에서

"인간이라면 구역질이 납니다, 선생님. 정말이지 구역질이 난다구요. 그들은 속속들이 사악합니다. 난장이와 거인이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보며 어떻게 즐거워할 수가 있는지 정말 궁금해요. 하지만 그게 바로 인간들이 원하는 거죠." (「본능의 기쁨」中, p123)

"사람들이라면 구역질이 나요, 선생님. 정말 정나미가 떨어진다니까요. 그들은 속속들이 흉악해요. 흉악하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인간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예요. 인간이란 걸 말이죠, 선생님, 하하! 날 웃게 내버려두세요., 좀 봤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의학의 발달에 힘입어 진정한 인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기형적인 존재들일 뿐이에요.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니까요.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기형적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적당한 말이 없네요. 파트너가 나를 품에 안고 젖병을 물리는 것을 보고 그들이 웃는 소리를 들어봐야 해요. 그들은 저속하기 짝이 없어요, 선생님. 짐승 같고 잔인하죠. 내게 그 반대의 느낌을 주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본능의 기쁨」中, p124~125)

"인간이란 아직도 전신(前身)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완성된 존재가 되리라." (「역사의 한 페이지」中, p159)

[북데일리 이명희 시민기자] heeya1980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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