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여인의 恨 `영영이별 영이별`
살아남은 여인의 恨 `영영이별 영이별`
  • 북데일리
  • 승인 2005.08.17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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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죽음을 요구할수록 더욱 불가해한 삶을 견디고 싶었다`는 한 여인이 있다.

조선조 27대 군왕 중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단종 그리고 그의 비 정순왕후 송씨를 기억하는지. 숙부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후 17세의 단종은 18세가 된 정순왕후와 청계천 영도교에서 `영영이별`을 했다.

경복궁에 있어야 할 단종 임금과 정순왕후는 숙부였던 수양대군에 의해 창덕궁 수강전으로 밀려나 상왕과 대비가 되어 불안하지만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으로 서로를 보듬은 채 살아갔다.

그러나 그 실낱같은 희망은 실낱조차 되지 않는 꿈에 불과했을까. 수양대군은 단종을 강원도 영월로 유배시키기에 이르고 청계천 영도교에서 부인 정순왕후와 마지막으로 손목만 잠시 부여잡다 놓은 채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

꽃보다 아름다운 나이 열여덟에 남편을 구천으로 먼저 보내고 자그마치 65년의 삶을 홀로 견뎌온 여인 정순왕후.

작가 김별아는 오롯이 그 자신이 정순왕후가 되어 한과 피가 엉켜버린 지난 82년의 삶을 한 권의 소설 `영영이별 영이별`(2005. 창해)로 내놓았다.

49절에서 시작되는 여인의 이야기는 신사년이었던 1521년 유월의 어느 더운 날, 영면의 길로 접어든 순간부터 실타래를 풀어간다.

"괴로운 찰나를 끊고 영원한 고요 속에 들다. 내가 빠져나온 거푸집을 내려다보며... 잠든 채로 죽을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다"라고 읊조리는 여인은 이미 저 세상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가벼이 발을 내디디며 지나온 삶의 궤적을 한꺼풀씩 들추어낸다.

조선조 2대 정종대왕부터 11대 중종대왕에 이르기까지 이 여인네의 눈과 귀와 마음 속에 담겨있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때로는 광폭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마치 남편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모조리 고자질하듯 풀어간다.

중종의 정비였지만 왕후의 칭호조차 받지 못하고 폐서인으로 강등된 여인 신씨, 그리고 그녀의 고모이자 연산의 비였던 또 다른 폐비 신씨의 굴곡많은 삶을 정순왕후는 낮게 되새김질한다.

자신의 삶이 바로 그들의 삶이었고 그들의 한이 자신의 한이었기에.

단종의 모후였던 현덕왕후의 세조에 대한 한풀이는 마치 정순왕후가 단종에게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듯 가볍게 그려진다. "죄없는 내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놈의 자식을 죽이겠다"며 구천을 떠돌던 현덕왕후는 세조의 비 정희왕후의 어머니와 자식을 죽이는데 일조한다.

귀신이 산자를 죽였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그 누가 믿을까마는 멀쩡했던 정희왕후의 어머니가 급서하고 세조의 아들 의경세자가 "나는 죄가 없소, 내 멱을 잡지 마시오"하며 죽어갔다면 현덕왕후의 혼이 대궐을 떠돌았다는 소문이 그저 소문이 아니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본다.

이밖에 원자를 낳고 이레만에 세상을 등진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평생 어머니 폐비 윤씨를 그리워하다 사무치고 굶주린 정에 궁궐을 전쟁터로 만들어버린 연산군, 세조의 비답게 피와 칼로 중긍전에 들었던 정희왕후, 세조에게 온몸이 갈갈이 찢겨진 채 죽음으로 항거했던 박팽년 그리고 철천지 원수 세조를 지아비로 섬겨야 했던 박팽년의 누이 근빈 박씨의 피눈물이 떨구어져 있다.

혼백이 되어 지아비가 먼저 간 길을 조심스레 가고 있는 여인의 눈에 이따금 온몸이 성한 데 하나없는 사육신들의 혼도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정순왕후는 말한다. "나는 살아 남아서 내 나이 28세때 세조가 죽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함께 살 수 없는 불구대천지원수를 가진 사람의 한이다.

김별아 작가는 친절하다. 섬세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화려한 문체를 통해 조선의 비극과 아픔을 알맞게 털어내고 있다. 역사가 복잡하고 골치아프고 외울 것도 많아 귀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책 `영영이별 영이별`을 권하고 싶다.

외울 것도 이해할 것도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그저 작가가, 정순왕후 송씨가 써 나간대로 따라가면 그 뿐이다. 슬프면 울고 아프면 쓰다듬어주고 그나마 기쁘면 웃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마지막 0절에 거의 다 이르러 정순왕후 송씨는 가만히 내지른다.

"세상이 죽음을 요구할수록 더욱 불가해한 삶을 견디고 싶었다." 고. 원수에 대한 복수를 질긴 삶으로 연명하고 결국 천수를 다한 뒤 남편을 따라간 정순왕후 송씨, 그녀의 바람대로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말고 새나 물고기가 되어 영영 이별없는 세상에서 지아비를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조만간 청계천이 완공되고 부부가 헤어졌던 그 다리 영도교가 새로운 모습을 드러낼 때 쯤이면 그들은 한 쌍의 아름다운 새가 되어 가벼이 그 푸른 하늘을 날고 있지 않을까.[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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