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토해낸 `박범신 북콘서트`
문학의 향기 토해낸 `박범신 북콘서트`
  • 북데일리
  • 승인 2006.10.2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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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떨어졌고 문학의 밤은 피어올랐다. 20일 저녁 8시, 서울 평창동의 한 재즈카페. `어두운 골방에서 글을 밀어내던` 작가는 멋쟁이들만 입는 하얀 재킷을 걸치고 나타났다. 박범신이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여름의 잔해>로 등단한 그는 그간 <풀잎처럼 눕다>(1980), <불의 나라>(1987), <물의 나라>(1988), <흰소가 끄는 수레>(1997), <더러운 책상>(2003) 등 20여 편의 소설, 산문, 희곡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날 열린 문학콘서트 `비우니 향기롭다`는 박 작가의 문학인생 33년을 되짚어 보고자 KBS `3라디오 북카페`가 주최한 뜻 깊은 자리였다. 사회를 맡은 홍세연 아나운서는 "33년 문학이란 나무에 목매달아도 좋을 만큼 문학을 사랑하고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해온 우리시대의 작가"라고 박범신을 소개했다.

박 작가의 얼굴은 붉었다. 긴장을 털어내기 위해 마신 맥주가 그의 구리빛 얼굴을 더욱 붉게 만들었다. 이미 70여명의 관객으로 지하 카페는 가득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차올랐다.

박범신은 "문학콘서트라고 해서 노래만 하는 줄 알았는데 문학도 하고 노래도 한다. 작가가 콘서트를 열고 가수가 문학의 밤을 열어도 좋겠다"며 "아름다운 글과 노래가 경계와 가름이 절벽에 놓인 답답한 세상을 덮을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낭독은 작가의 육성으로부터 시작됐다.

박범신은 1993년 절필선언 후 긴 침묵 끝에 토해낸 <흰소가 끄는 수레>(창비, 1997)의 한 대목을 읽어갔다. “나는 애당초 그것들을 두고 가려고 그 새벽 임종사를 썼다. ‘당신 그러다가 죽겠어. 제발 당장에, 지금 당장에, 때려치워, 그 소설.’ 때때로 소설쓰기는 나를 행복하게 했고, 또 많은 시시때때, 소설쓰기는 천형(天刑)이었다...”

문장, 행간, 단락마다 담긴 작가의 비밀스러운 통곡이 고결하게 울려 퍼졌다. 작가와 독자의 거리는 채 1m도 떨어지지 않았다. 작가의 미동에 청중은 전율했다.

문단후배와 지인들의 함께한 문학콘서트

박범신의 문단 후배인 김민정 시인이 무대에 올랐다. 그는 박 작가의 처녀시집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문학동네, 2003)를 들고 나왔다. 읽고 또 읽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시인의 입에서 `하, 봄날은 간다`가 되살아났다.

"선생님은 밝은 날에도 `불콰한` 얼굴로 허적허적 걸어간다.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면 흰 뼈가 보일 때가 있다. `하, 봄날은 간다`가 가장 선생님스러운 시라 낭송했다."

등단 30주년을 기념해 낸 시집은 박범신의 외도였다. 그는 천성이 소설가다. 박범신의 너스레가 이어졌다. "계몽적이고 아름다운 시도 많은데 왜 하필 그 시냐. 그렇게 사정을 했는데..." 너털웃음을 짓던 그는 "못 쓴 시라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으니 남의 시처럼 좋아 보인다"고 겸연쩍어했다.

이어 탤런트 유지인은 <흰소가 끄는 수레>의 한 대목을 낭랑한 목소리로 읊었다. 유지인은 독자의 입장에서 박 작가에게 33년 문학의 열정을 쏟을 수 있었던 힘에 대해 물었다.

박범신은 "나는 나에게 기득권을 줄 수 있는 것을 놔버린다. 그로인해 권력에서 멀어지고 고독해지면서 나를 밀어내는(글을 쓰는) 힘을 발휘한다"며 "나도 어쩔 수 없는, 함정같은 깊은 우물 속에서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자기에게 가장 불리한 조건들이 자신에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늘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 행복할 때도 항상 죽고 싶었다. 사회적 책임을 져야하거나 사랑하는 가족과 있을 때도 항상 죽음을 떠올렸다"고 밝혔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사람보다 높지않다"

지난겨울 박 작가와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행을 동행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장애인, 가수 손병휘와 풍경도 문학콘서트에 함께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박범신의 히말라야 산행기록을 모은 사색편지 <비우니 향기롭다>(랜덤하우스중앙, 2006)의 한 대목을 낭독했다. 그는 박범신을 `편안한 형님`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성격은 여행을 함께 갔다오면 알잖아요. 한마디로 선생님은 편안한 형님이다. 함께 동행한 장애우 친구들과 연배차이가 많아 걱정했는데, 선생님은 분위기가 불편해질까봐 먼저 너스레를 피우셨다. 덕분에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산행을 함께한 가수 손병휘는 박 작가의 시 `편지`에 곡을 붙여 들려주었다. 박범신은 "산이 좋아서 간다기보다 설산이 주는 감동이 있다. 산에 가면 자본주의 문명사회에 억눌렸던 감동이 고개를 쳐든다"며 하지만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사람보다 높지 않다. 사람의 정상은 가름할 수 없다. 사람이 서 있는 곳이 바로 정상"이라고 노래에 화답했다.

문학콘서트는 격식이 없었다. 무대를 중심으로 `ㄷ`자로 작가를 둘러싼 관객들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작가와 함께 캔맥주로 목을 축였다. 관객은 대학생부터 5, 60대까지 다채로웠다. 몇몇 사람들은 낭독이 이어지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글과 음악이 어우러져 시간이 물처럼 흘러갔다.

꽃그늘처럼 환한 본성으로 돌아온 작가

어느새 저녁 10시 반. 문학콘서트가 시작된 지 2시간여가 흘렀다. 마지막 낭송자로 허운나 한국정보통신대 총장이 나와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에 수록된 시 `저물녘`을 낭독했다.

박범신은 "삶은 즐겁고 근사한 것이다. 불멸에의 꿈을 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삶은 에너지로 충만해진다"며 "우리 마음속에 정말 그리운 것들이 있다. 2, 30대 사회 나와서 잊고 살다가 6, 70대 쓸쓸히 죽어선 안된다. 내가 원하는 삶을 포기하면 안된다"고 당부했다.

문학콘서트 막바지에 박범신은 직접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줘 감사하다"며 자신의 18번인 `봄날은 간다`에 이어 앵콜곡으로 `세월이 가면`을 불러 방청객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날 문학콘서트는 박범신의 문단 후배, 제자, 지인들이 게스트로 참석해, 그의 문학인생 33년을 톺아보는 알찬 자리로 갈무리 됐다.

문학콘서트가 시작되기 전 박범신은 그를 찾아온 지인들을 손수 맞이했다. "33년째 집에서 같이 사는 여자친구"라며 아내를 소개하고 "가장 훌륭한 작가다. 어깨가 넓다는 콤플렉스가 있다"며 방송작가와 스태프까지 일일이 살가운 소개말을 달아주었다.

환갑을 맞은 박범신은 이제 `꽃그늘처럼 환한 본성의 얼굴을 하고 부끄러움 없이` 집으로 돌아온 이처럼 보인다. "매일 죽고 싶었다"는 그는 설산 히말라야에서 깨달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미 너무도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그는 이날 보았다. 행복해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나이를 먹으면 매일 매일 추락을 한다. 나는 지난 5~6년 동안 아프게 받아들였다. 이제 모든 것을 내 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시간이 눈부시게 흘러가고 있다. 등단 33년, 이제부터 글을 써볼까 한다."

[북데일리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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