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70번 읽은 문학카페 주인장
삼국지 70번 읽은 문학카페 주인장
  • 북데일리
  • 승인 2006.10.2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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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음 `문꿈사` 운영자 이진화씨

“역사소설을 좋아해요. 특히 이문열씨가 평역한 ‘삼국지’는 총 23번 읽었습니다. 다른 번역서까지 합치면 ‘삼국지’ 한 작품을 70번쯤 읽은 것 같아요.”

다음 카페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http://cafe.daum.net/heepoet)(이하 ‘문꿈사’)의 운영자 이진화씨는 인터뷰 시작부터 기자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이문열의 <삼국지>(민음사. 2002)는 전 10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 한 번 완독하기도 힘든 작품을 23번이나 읽었다니, 그야말로 ‘놀랠 노’자다.

왜 그렇게 여러 번 읽었을까. ‘책 좀 읽어볼까’하는 생각이 들면 자신도 모르게 <삼국지>를 펼쳐 들게 된단다. 매년 봄, 가을, 겨울에 한 번씩은 꼭 읽는다고. 여름을 건너뛰는 건 더워서 책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나이 27. 나이에 비해 ‘완숙한’ 독서 이력을 자랑하는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독서는 작가와 나, 둘만의 대화”

“대학 초에는 전공 관련 서적만 읽었어요. 그런데 독서 경향이 한 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사고가 편협해지더라구요. 그래서 다른 분야의 책으로도 눈을 돌린 거죠. 처음엔 헌법 관련 철학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싶더니 미래의 법관을 꿈꾸는 법대생이었다. 현재는 휴학을 하고 학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고.

그런데 밥 먹고 잠 잘 시간도 없다는 고시생이 책 읽을 시간은 있었을까. 물론 없다. 허나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관이 단순히 법률 이론만 빠삭해서 되겠는가. 이씨에게 독서는 학습의 연장. 고시공부만으로는 알 수 없던 세상의 이치를 책을 통해 깨달아가고 있다.

“독서는 작가와 독자, 둘이서 나누는 대화잖아요. 말이 안 통하면 몇 번이고 되물어 이해를 해야죠. 이런 과정을 통해 책에 담긴 지식을 제 것으로 만드는 거에요.”

배움의 과정이기에 모르는 것은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한다. 이씨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책, 마음에 듣는 책은 몇 번이고 독파한다.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은 한스 켈젠의 <정의란 무엇인가>(삼중당. 1995)는 10번, 요즘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있는 <칼의 노래>(생각의나무. 2003)는 5번을 읽었다.

제목부터 심오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플라톤의 정의관 등 정의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모아놓은 논문집. 저자가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대신, 후대 학자와 독자에게 실마리를 제공하는 데서 그치는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문학, 즐기기 전에 기본부터 익혀야

이씨는 카페 운영에 있어서도 자신의 독서론을 그대로 적용한다. ‘문꿈사’가 문학, 그 자체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이긴 하지만 기본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 카페 게시판 ‘文學산책’에는 이씨가 손수 타이핑한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이 빼곡히 쌓여있으며, ‘詩論&문학이론’에는 시 작법 등 창작 관련 이론이 즐비해 있다.

그는 “쇼펜하우어를 검색하면 카페 중 유일하게 ‘문꿈사’만 나온다”며 “이제는 더 이상 올릴 게시물이 없을 정도”라고 카페가 보유한 방대한 자료를 자랑했다.

2002년 10월 개설된 카페가 4년 넘게 활발히 운영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내실’덕분인 셈. 하지만 ‘문꿈사’는 이씨가 직접 만든 카페는 아니다. 2005년 초 개설자가 등단해 시인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현재 공동 운영자인 지인(아이디 ‘별 그리고.. 그리움’)의 제안으로 운영을 맡게 됐다.

‘창작 詩’ ‘창작 글’ 등 회원들의 습작 위주로 꾸며지던 게시판이 책을 소개하는 ‘영혼의 양식’, 작가별.국가별로 나누어 시를 정리한 ‘세계의 명詩’ ‘한국의 명시 100선’ 등으로 다채로워진 데는 지금 운영자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그렇다고 게시판에 딱딱한 문학이론과 자료만 있는 것은 또 아니다. 이름부터 시적인 ‘그대..꿈꾸고 있나요?’ ‘언어의 유희..글귀’ ‘詩가있는白紙’ ‘잃어버린 꿈의 속삭임’은 책, 영화에서 뽑아낸 좋은 글, 회원들이 추천하는 시를 올리는 자유로운 공간.

이 중 이씨가 특히 애착이 가는 게시판은 ‘詩가있는白紙’이다.

그는 “<한국문학 비평이론>에서 인터넷 문학에 대해서 비판한 글을 읽었다. 음악, 배경 등의 과다 사용으로 본질적인 문학의 형태가 훼손당한다는 내용이었다”며 “작품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태그의 사용을 일체 제한하고, 순수하게 글만 올리도록 설정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문꿈사’가 정모를 하지 않는 이유

깊이 있는 자료들, 3만 4천여 명에 육박하는 회원 수.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듯한데, 이씨는 실제로 활동을 활발히 하는 회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탄식한다.

그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유머 관련 카페에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린다”며 “요즘 세태가 문학은 어렵고 무겁다며 멀리하고, 가벼운 ‘가쉽거리’만 쫓아다는 것 같다”고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문꿈사’가 정모를 하지 않는 이유도 카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다. 오프라인 모임을 자주 갖게 되면 인터넷 공간이 죽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 게시글과 덧글을 통해 오가던 대화가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카페가 소강되는 경우를 많이 봤단다.

대신 회원들이 좋아하는 시인을 모시고 ‘낭송회’를 진행할 계획은 있다. 자신만의 신념과 철칙으로 카페를 꾸려나가지만 영 ‘꽉 막힌’ 운영자는 아닌 것. 이씨는 회원들의 목소리에도 항상 귀 기울이고 되도록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받아들일 수 없는 의견도 더러 있다. 많은 회원 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카페를 팔라는 제안, 형편이 어렵다고 다짜고짜 3백만원만 빌려달라는 부탁은 가차 없이 거절했다.

“우리는 일상과 문학을 가깝게 하기 위한 모임이에요. 그저 책과 사람이 좋아 모인 ‘순수한’ 카페에 돈의 논리를 개입하는 건 용서할 수 없죠.”

인터뷰 내내 이씨의 어조는 단호했고, 태도는 다부졌다. 문학 관련 카페가 점점 줄어들고 ‘문꿈사’의 활동도 예전 같지 않다고 걱정하면서도, 앞으로의 운영 계획까지 이미 설계해 놓은 상태.

“카페 홍보를 강화할 거에요. 지금은 3.40대의 중년층 회원분이 많은데 좀 더 젊은 층에 어필하려고 해요. 세대를 초월해 문학으로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자유롭고 편하게 문학을 즐기지만 깔려있는 바탕엔 깊이가 있는, 그게 바로 저희가 추구하는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근래 보기 힘든 ‘진지청년’ 이씨, 최고의 파트너 ‘별 그리고.. 그리움’, 3만 여명의 회원, 기본부터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자료들, 그리고 문학에 관한 순수한 열정.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문꿈사’의 미래는 한없이 밝을 듯하다.

[북데일리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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