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하지만 읽게되는 그녀-`노통`
혐오하지만 읽게되는 그녀-`노통`
  • 북데일리
  • 승인 2006.09.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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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노통이 싫어. 싫어. 싫어”라는 말를 달고 다닌다. 그리고 그녀의 마구잡이로 내뱉는 독설을 혐오한다. 하지만 꼭 도서관에 들러 집어오는 책 중에는 꼭 그녀의 책이 포함되어 있으니 아이러닉한 일이다.

그녀-노통의 소설은 제목부터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내가 이 책의 제목을 큰소리로 읽어주자 사람들의 반응은 그러했다. <배고픔의 자서전>(열린책들. 2006). 노통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이 위트한 제목에 피식웃음을 날리며 책을 만만하게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통은 여지없이 이들에게 마구잡이 독설을 날린다. `네까짓 게 이런 거 알기는 알아?` `너 어렸을 때 이런 책 봤어?` `이런 생각 했어?` `대체 넌 무슨 생각으로 사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진짜인거 같애?` 등등.... 뼈아픈 소리들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내린다. 집중폭격이다. 짧은 시간에 한 곳에 집중적으로 쏟아 붓는 공격, 그 공격이 미쳐 방공호로 대피하지 못한 나를 덮친다.

노통의 책을 읽고 나면 ‘아비규환’ 그 자체이다. 여기저기 부조리한 나와 너희들, 그리고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이 속에서 대체 나는 그 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노통이 의도한 것일까? 그렇다면 노통에게, 감히 괘씸하게 모든 것을 발칙한 말투로 까발리는 그녀에게 질수는 없다.

최근 번역되어 나온 노통의 <배고픔의 자서전>은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노통 자신의 배고픔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굶주림을 어린 시절 자신과 연관 지어 우리에게 배고픔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며 성장과정과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명작이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는 아주 친절한 책이다.

하지만 이런 친절함에 속으면 안 된다. 이 노통의 친절함 속에는 노통의 비웃음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노통은 ‘바보들, 내가 너희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줄 알았지?’라고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배고픔은 어린 시절 노통의 굶주림이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노통의 배고픔? 그것은 실제적인 육체의 배고픔이 아니라 정신 그러니깐 영혼의 배고픔이다. 모든 관심의 배고픔이다. 사랑과 이성에 대한 배고픔. 그리고 그 배고픔이 미묘하게나마 채워졌을 때의 쾌락. 충족되지 않는 배고픔은 책 읽는 행위를 통해서 그나마 자멸하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이 배고픔은 훗날 글쓰기라는 행위로 완결되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아~ 노통이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구나’라고 넘어가면 안 된다. 좀 더 연관을 지어 노통 그녀가 아직까지도 공격적인 문체로 무언가를 자꾸만 발표해내는 지금도 그녀의 `배고픔`은 충족되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내어야 한다. 그리고 노통에게 다시 웃으면서 말해줘야 한다.

“하지만 난 다 알고 있어, 너의 배고픔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는 걸 말이야!! 후훗”

[북데일리 장하연 시민기자] xx2000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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