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체의 재발견
생물체의 재발견
  • 북데일리
  • 승인 2006.09.08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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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이런 의문을 한번쯤은 가져봤을 것이다. 이 세상에 만들어진 물건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컴퓨터는 평방근 계산과 같은 수학계산, 시험비행과 같은 시뮬레이션을 실행한다. 그렇다면 복잡한 기계를 만들어내는 지성을 가진 인간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 도킨스는 여기에 대해 주저함 없이 인간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유전자가 생존하고 있는 운반자이며, 이성을 만나 자손을 번식해서 그들이 영원히 살아남게 하는 것이 유일한 존재이유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환원주의적이며 물질주의라고 비판받을 수 있지만, <확장된 표현형>(을유문화사. 2004)을 읽다보면 전공인 동물학에서 분자생물학, 진화생물학, 발생학, 면역학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지식과, 자신의 이론을 설득시키기 위해 수많은 관련분야의 책들을 인용하는 부지런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연선택이 개체가 아닌 유전자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설명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전자는 눈으로 볼 수 없고 그것이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도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직관적인 이런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몸의 내부에 있는 DNA를 볼 수 있는 특수한 안경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것을 통해 본 DNA는 마치 우주와 같을 것이다. 1조개의 100만 배, 그 이상의 DNA 조각들이 한데 뭉쳐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복잡한 시스템의 논리로 생각해보면, 현재의 인간을 포함한 동. 식물들의 진화는 지적 설계자의 개입을 생각하지 않고는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는 사건인 것이다. 그것을 진화의 관점에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질학적 시간을 통해 유전자들이 자연선택에 의한 경쟁에 의해 세대를 거듭하면서 소규모의 개선을 통해 현재와 같은 복잡한 개체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논점이다. 그러므로 유전자에게 있어서 자손을 통해 후대에도 살아남는 것은 개체의 생존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 된 로봇이다.

도킨스는 전작인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2002)의 마지막 장에서 밈(문화유전자)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밈은 비유전적이며 뇌 속에 살고 있는 정보의 단위로 외부세계의 정보를 글자처럼 새겨 넣을 수 있다.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 눈을 통해 보이는 영화, 다른 사람들의 지적 생성물인 책, 그리고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 이런 비물질적인 것들은 유전자처럼 우리의 뇌 속에 새겨지고, 복사기가 A4 용지를 카피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뇌 속으로 전파된다. 이런 식으로 세계는 밈으로 가득 차게 된다.

밈은 유전자보다 전달속도는 빠르지만 복사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일어나면서 더욱더 다양해지면서 개선된다. 밈은 유전자처럼 확실한 물리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지구상의 모든 동물과 달리 의식을 가진 인간의 특별함을 설명하는 하나의 훌륭한 가설은 될 것이다.

이제 이 책의 중심주제인 “확장된 표현형” 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유전자의 외부세계에 대한 효과를 표현형이라고 한다. 그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피부색, 눈의 색깔, 키, 비만의 정도를 포함해서 행동을 규정하는 성격, 지능을 나타낸다. 지능과 같은 표현형은 유전자만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고 환경의 영향도 같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도킨스는 여기서 한 단계 다 나아가서 유전자가 개체를 통해 만들어낸 인공적인 건축물, 개체를 뛰어넘어 다른 개체의 유전자를 원격조작하는 “확장된 표현형”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얼핏 듣기에 신비적으로 들린다. 책에서는 다양한 동. 식물의 행동 양태로 설명하고 있다. 꿀벌과 그 속에 기생하는 기생충의 경우를 보면, 기생충의 유전자는 생존하기 위한 이기적인 목적으로 숙주인 꿀벌의 유전자를 원격조정해서 호수에서 자살하게 만들고 몸 밖으로 나온다. 인간의 경우에도 이런 것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몸속에 있는 기생충이 우연하게 뇌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고 가정하자. 행동을 조절하는 호르몬의 유전자가 있고 그것을 기생충의 유전자가 원격조정에 의해 조작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긴 하지만, 이 세계의 지배자인 유전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공상과학에서나 있을법한 일이 진화생물학의 이론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도킨스의 이론은 혁명적이지만 그것의 가장 큰 문제는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꿀벌, 개미, 달팽이, 거미 와 같은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해서 진화론의 알려진 이론과 상상력으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지만 언제나 들어맞지는 않는다. 새로운 상황이 생길 때마다 이론을 수정하고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일관성이 없어진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동물의 모든 행동을 진화론적으로 해석하게 되면서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괴물이 사람들의 의식에 퍼지게 되는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사람들은 현재의 불리한 상황이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었고 지금보다 더 좋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패배주의에 빠져들게 된다.

도킨스는 이것을 오해라고 단언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만든 것은 유전자에 의한 것만이 아닌 환경의 영향도 고려해야 하고, 환경에 의한 결정론 역시 똑같이 유해하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것과는 별도로 결정론 이라는 것은 없으며 사건A가 사건B에 선행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원인과 결과로 봐야 할 논리적 이유는 없다는 견해를 밝히는데 그것은 생물학에서 다룰 내용이라기보다는 철학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문제는 유전자에서 표현형으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간결한 이론을 정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떤 유전자가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표현형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도킨스를 포함해서 현재의 모든 진화생물학, 분자생물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확장된 표현형> 은 생물학을 전공하거나 관심이 있는 독자가 읽어야 할 책이다. 진화생물학의 전문용어는 독자를 현기증 나게 만든다. 주제자체의 난해함과 영어문장을 읽는 듯한 번역은 생물학에 문외한인 일반인의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도킨스가 제시한 진화생물학상의 생명체와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재해석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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