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일요일 훔쳐보는 씁쓸한 재미
타인의 일요일 훔쳐보는 씁쓸한 재미
  • 북데일리
  • 승인 2006.08.2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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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대어>, <파크 라이프>, <퍼레이드>를 읽어본 적이 없으니, 내게 요시다 수이치는 낯선 작가이다. 그러나 1968년생 어쩌면 나와 비슷한 시기에 걸음마를 떼고, 동요를 배우고, 영어를 익히기 시작하고, 연애를 했을 것 같다는 동질감에 은근히 정이 간다. <파크 라이프>로 127회 아쿠타가와 상을 받고도, <파편>,<돌풍>,<열대어>로 세 번이나 더 아쿠타가와후보에 오른 요시다 슈이치. 그의 매력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궁금해 서둘러 책장을 넘긴다.

<일요일들>(북스토리. 2005)은 엄마를 찾아 쿠슈에서 도쿄에 온 두 명의 어린 남자아이들이 만난 다섯 명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섯 주인공은 서로 만난 적이 없이 별개의 이야기를 꾸려가는 주인공들일 뿐이다. 이 구조는 마치 로버트 알트먼의 영화 ‘숏컷’과 비슷하다.

‘일요일의 운세’편에 등장하는 다나타는 자신이 좋아하는 야무진 여자친구와 헤어지기 싫어 굳은 결심을 하고 와세다 대학에 시험을 치른다. 결과는 다나타만 합격이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는 형님이 고향에서 공무원 생활을 해 부쳐준 돈 50만 엔을 갖고 아파트를 얻어 클럽의 웨이터로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에게는 밴드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살아가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와 그녀는 같은 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다.

어느 일요일, 그의 아파트의 벨소리가 울렸다. 두 명의 꼬마가 현관에서 엄마를 찾는다. 분명 주소는 맞지만, 엄마는 이 아파트에 더 이상 살지 않는다. 집주인으로 부터 엄마의 주소를 받아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그날이 일요일이다. 그리고 그날 밤 그가 일하는 클럽의 마담이 그에게 매니저가 되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단 조건은 여자친구가 그 클럽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가 고민을 털어놓자,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은 새 악단을 따라 상파울로에서 레코드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으면서도 그는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번듯한 대우를 받으며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그에게 남은 선택은 한 가지. 그녀를 따라 상파울로로 가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일요일의 엘리베이터’는 매주 일요일이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를 내려와 쓰레기봉투를 버리는 와타나베의 이야기이다. 그는 백수이다. 그에게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는 그저 그녀가 알려준 대로 의료관련학과를 다니는 대학생인 줄로만 믿고 있다, 어느 날 그녀의 핸드백 속에서 의대생 학생증을 발견하게 된다. 그에게는 그녀가 의대생이라는 것이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되거나 그녀를 놓아주어야 할 변화의 계기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의사고시를 통과하고 인턴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녀의 생활이 바빠지자, 그들의 연애에도 균열이 생긴다.

차일피일 헤어지자고 말하려는 것을 미룰 수밖에 없는 와타나베에게 그녀 역시 일상의 피곤함은 그의 결별 선언조차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 그들은 그렇게 헤어지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병원을 찾게 된 와타나베는 하얀 의사복을 입은 그녀가 병원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여느 일요일과 마찬가지로 쓰레기봉투를 들고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탄다. 파친코 앞에서 마주쳤던 두 꼬마가 엄마를 찾았을지 궁금해 하면서.

세 번째 이야기, ‘일요일의 피해자’는 연애소설을 읽고 있던 나츠키에게 걸려온 대학 동창생 치카케의 전화로 시작된다. 치카케는 2주전 강도를 당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겁에 질린 나츠케는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며 불안해하다, 7,8년 전 함께 오사카로 여행을 했던 때를 기억하게 된다. 차분하고 보수적인 성향의 치카케와 되바라진 아야 사이의 갈등으로 불거진 불쾌한 일요일의 귀향 열차 속의 혼잡함 속에서 그들은 두 꼬마를 만나게 된다.

넷째 이야기, ‘일요일의 남자들’은 몇 년 전 여자 친구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게이고의 이야기이다. 게이고의 아버지는 목수로 쿠슈에서 일을 한다. 그도 얼마 전에 아내를 잃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던 가부장적인 그도 아내의 죽음 이후 스스로 밥을 지어먹으며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들른 도쿄의 아들집이 어질러진 모습을 보고 죽은 애인을 잊지 못하는 아들 녀석에게 못마땅해 한다. 두 사람은 언젠가 아버지가 가 본적 있는 초밥 집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굶주린 두 꼬마를 보고 초밥을 사주게 된다.

마지막 이야기, ‘일요일들’은 남자친구에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수년을 함께 동거한 삼십대 중반의 노리코의 이야기이다. 맞는 일에 이골이 난 노리코는 어느 날 남자 친구를 피해 여성의 쉼터에 전화를 걸고 쉼터를 찾아가 면담을 한다. 면담을 하고 쉼터에서 쉬는 날, 그 곳에 있던 두 꼬마에게 노리코는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는데, 쉼터 측에서는 두 꼬마의 엄마를 찾았으나 엄마가 아이들을 만나기를 거부한다. 결국 두 꼬마는 헤어져 입양되고, 소설은 노리코의 현재로 바뀐다.

노리코는 이제 여성의 쉼터에서 차장으로 일한다. 나고야 소재 여성의 쉼터의 소장이 되어 이사를 가던 중, 나고야는 잠시 호텔 로비에 들러 커피를 마신다. 그곳에서 훌쩍 자라 각각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된 꼬마들이 상봉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언젠가 자신이 그들에게 샌드위치를 주면서 약속한 `둘을 절대 떨어져 살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거로 준 자신의 귀걸이를 하고 있는 중학생 꼬마를 보게 된다.

요시다 슈이치가 요즘 쏟아져 나오는 젊은 일본작가들과 다른 점은 동시대성을 수용하되 그것을 뛰어넘어보려는 진지한 노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즈음 일본 젊은 작가들의 소설 속에서 보이는 사랑 없는 섹스, 가벼운 연애, 현실적 목적에서의 동거가 그저 이야기의 소재가 아닌, 그것들이 삶에서 최소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고찰하려고 노력의 흔적들이 이곳저곳에서 발견된다.

삶의 찰나적 우연조차도 가볍게 스쳐지나가지 않고, 이면의 무거움까지 들여다보려하는 작가적 진지함이 드러난다. 요즘의 젊은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현실의 각박함을 벗어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소설적 환상을 제공해준다는 미덕을 갖는다면, 요시다 수이치의 작품은 기성 작가군단이 내놓는 무거운 소설들과 이들 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지루한 일상을 잊고 소설 속으로 도피하고 싶은, 그리하여 그 안에서 탈선과도 같은 연애, 음란한 듯 한 섹스로 만족하고 싶은 독자들한테는 권할만한 소설은 분명 아니다.

소설은 엽기적이지 않고, 발랄하지도 않지만, 늘어지거나 심각하지도 않다.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비록 엄마를 찾아 헤매는 두 소년을 도와주려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고 해도 어쩐지 차갑다. 은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요시다 수이치의 두 눈빛이 그랬듯이....

[북데일리 김영욱 시민기자] syl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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